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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현지시간) 열린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김기덕(왼쪽) 감독과 배우 조민수가 함께 '황금사자상'을 들어 보이고 있다. 조민수는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의 경우 주요부문 중복 수상이 불가능하다는 영화제 규정 때문에 아깝게 여우주연상을 놓쳤다 . AP 연합뉴스 |
- 중졸 학력·공장 노동자생활
- 프랑스 건너가서 영화 접해
- 1996년 '악어'로 감독 데뷔
- 메가폰 잡은지 16년 만에
- 세계 3대 영화제 석권한
- 최초의 한국감독으로 우뚝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52) 감독은 비주류 아웃사이더로 출발해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거머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영화를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고 거친 환경 속에서 잡초처럼 살아온 그는 미술적인 재능을 독학으로 깨우치는 등 타고난 예술성으로 자신의 삶에서 깨달은 인간성의 극단적 측면을 영화로 표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고유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1960년 경상북도 봉화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가정 형편 때문에 일반 고등학교가 아니라 공식 학력으로 인정되지 않은 농업학교에 갔고 결국 최종 학력은 중졸이 됐다. 학교 졸업 뒤 취업을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공장에서 일하며 여러 가지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이런 배경 때문에 그는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스로를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해병대에 자원 입대하고 제대 후에는 프랑스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 한국에 있을 때 대학로에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을 하기도 한 그는 프랑스 남부의 한 해변에서 초상화 그리기로 생계를 유지하며 미술가로서의 재능을 키운다.
당시 프랑스에서 32세의 나이에 처음 봤다는 영화 두 편 '양들의 침묵'과 '퐁네프의 연인들'은 이후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한국에 돌아와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1995년 '무단횡단'이라는 시나리오로 영화진흥위원회의 공모에 당선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6년 첫 영화 '악어'를 연출, 영화를 처음 본 때로부터 불과 4년 만에 감독으로 데뷔한다.
사회 밑바닥의 음울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극단적인 폭력과 성폭행, 엽기적인 행각, 변태적인 심리 등을 자주 그린 그의 영화들은 평단의 논쟁을 불러왔지만, 기존의 영화 작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인장을 강렬하게 새긴 그의 작품들은 국내외에서 점점 주목받기 시작한다. 1998년 세 번째 작품 '파란 대문'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파노라마 부문 개막작으로 상영되고, 다음 작품 '섬'이 2000년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으며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는 월드시네마상을 받았다. 이어 2001년 '수취인불명'으로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2001년에는 '나쁜 남자'로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다. '나쁜 남자'는 국내에서 7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면에서도 처음으로 성공한다.
2003년 연출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국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거머쥐며 국내에서도 드디어 인정받는다. 이어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한 해에 세계 3대 영화제에서 2관왕을 차지한 그는 세계적인 거장 감독의 반열에 오른다. 2005년에는 '활'로 칸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고 2007년에는 '숨'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다.
2008년 본인이 시나리오를 쓰고 제자인 장훈 감독에게 연출을 맡긴 '영화는 영화다'는 130만 관객을 동원하며 김기덕의 영화 중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다. 하지만 이후 장 감독이 대형 투자배급사와 손잡으며 자신을 떠나고, 같은 해 '비몽' 촬영 과정에서 주연 배우 이나영이 죽을 위험을 넘기는 일을 겪은 뒤 김 감독은 농촌의 오두막에 칩거,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3년여간의 은둔 생활 중 인간 존재에 대해 질문하고 영화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다큐 형식으로 담은 영화 '아리랑'은 2011년 칸영화제에 출품돼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받는다. 베를린, 베니스에 이어 칸에서까지 수상하며 그는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최초의 한국 감독으로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