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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문학기행 <19> 최석 시인과 함께하는 카자흐스탄 문학기행 (하)최석의 문학세계

이역만리에 던져진 韓人의 삶과 죽음, 애틋한 시어로 위로하다

  • 오상준 기자 letitbe@kookje.co.kr
  •  |   입력 : 2012-08-21 20:08:11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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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 시인이 고려인 강제 이주의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공동묘지에 서 있다. 공동묘지는 최 시인의 주요 창작 무대다.
- 16년전 이주해 세탁소하며 생활
- 친했던 현지 친구의 죽음 목도뒤
- 고려인들의 역사에 본격적 관심
- 고통·아픔 달래주는 글쓰기 시작

최석 시인은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이사온 지 올해로 16년째다. 낯선 이국 땅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돈도 많이 벌었다. 우리나라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관청의 부정부패와 비상식적인 요구, 운영하던 세탁소 직원의 비리에다 떼강도까지 당해 다 집어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적인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알마티 이야기'라는 제목의 연작 시를 썼다. 그의 시에는 고향을 떠나 이방인으로 산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지 녹아 있다.

카자흐스탄의 광활한 대지와 한국의 좁은 땅을 대비하며 읽는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최 시인이 회장으로 있는 '중앙아시아 고려문화인협의회'가 우리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온 공로로 지난해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받았다.

■시의 화두는 죽음

최 시인의 연작 시 '알마티 이야기'에는 죽음과 관련된 시 몇 편이 있다. 그는 자신이 사는 알마티에서 차로 1시간가량 걸리는 인접 도시 부룬다이의 공동묘지를 자주 찾는다. 부룬다이 공동묘지가 최 시인의 주요 창작 무대인 셈이다. 그의 대표 시 '부룬다이 가는 길-알마티 이야기 8'을 살펴보자.



알마티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다.

기차를 타고 며칠을 달려도 지평선이 보인다.

누군들 주눅이 들지 않겠는가.

쥐코밥상만 한 한국의 땅덩이에 한숨이 나고

아등바등 거리는 오늘의 삶에 눈물이 난다.

죽어서도 묻힐 땅조차 없는 우리들

이승에 움집 하나도 내 것이 아닌 바에

죽어 한 줌 재로 날린들 무에 대수겠는

가.

친했던 고려인의 하관을 마치고 온 후로

부룬다이, 모래 한 점 섞이지 않은

대지의 속살을 만지고 난 후로

문득 이곳에 뼈를 묻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업보이거늘

살고 죽는 일이 어디 내 소관일까 마는



시인은 10년 전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룬다이 공동묘지를 찾아 '부룬다이 가는 길'이라는 시를 썼다. 이 시가 고려인의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한다. "타자의 죽음을 보고 아, 나도 어쩌면 한국이 아닌 카자흐스탄에 묻힐 수 있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어요. 미어터지는 한국과 광활한 카자흐스탄이 대비되면서 고려인의 삶과 내 삶의 미래가 교차하는 것 같았죠."

시인에게 죽음은 자신을 삶을 성찰하고 삶의 의욕을 다시 불태우게 한다. 눈물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고 슬픔을 정화하는 것처럼. 타인의 죽음은 자신의 문제로 성큼 다가온다.

그는 동갑내기 친구의 죽음을 보고 쓴 시 '폼생폼사-알마티 이야기 48'에서 '죽을 때 만큼은 폼 나게 죽고 싶다. 그러나/어떻게 사는 것이/어떻게 죽는 것이 폼 나는 것인지/모르겠다(…)폼 나게/똥 폼 나게'라고 말했다.

■부산 출신 배구선수 윤영래 묘지

지난 3일 문학기행팀이 부룬다이 공동묘지를 찾았을 때 뜻밖에 부산 출신의 전 국가대표 여자 배구선수 윤영래(1952~2004년) 무덤을 만났다. 부산 동주여상을 나와 대농과 미도파에서 활동한 그녀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조혜정(전 GS 칼텍스 감독)과 함께 한국 여자 배구가 3위로 구기종목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따내는 데 역할을 했다. 이번 영국 런던올림픽에서 여자 배구는 36년 만에 4강 신화를 이뤘다.

최 시인은 "카자흐스탄에 온 윤 선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매우 깊은 병이 있어 보였다. 배구로 한 시대를 풍미한 그녀가 갓 쉰을 넘기고 이국만리에서 암으로 숨져 안타깝다"고 회상했다. 문학기행에 참가한 임여옥 씨는 최 시인이 윤 선수를 기억하며 쓴 시 '한 여인의 짧은 기록-알마티 이야기 35'를 감정을 살려 낭송하자 일행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전생에 말이었을 것이다./또한 다음 생에도 말로 돌아갔을 것이다./(…)말처럼 뛰어 다니던 아름답던 처녀/슬픔이 강한 스파이크 되어 내리꽂힐 때/온몸으로 받아 내던 백치의 처녀를 기억한다./껑충거리며 환호하던 승리자로서의/그녀를 기억한다./아름다웠노라고./정녕 아름다웠노라고./그녀는 텐산과 광활한 평원이 펼쳐진 언덕 위에/곤한 육신을 풀었다. 서러워 곡해 줄 자식조차 없어/광야를 맴돌던 말들이 울어 주어야 했고, 살찐 까마귀들이 떠나지 않는다./살아서 불리던 이름/윤영래다.'

이곳 공동묘지에는 테이블이 있는 무덤이 꽤 있었다. 최 시인은 "죽은 자도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고 쉬라는 배려 차원에서 설치됐다"고 설명했다.

■돈방석에서 떼강도까지

최 시인 가족의 카자흐스탄 이주기는 한 편의 영화를 방불케 한다. 그는 1996년 12월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카자흐스탄에 이주해 세탁소를 운영했다. 당시 카자흐스탄에는 세탁소라는 것이 없어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손님이 세탁소에 몰려들어 밥을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밤 늦게까지 일했어요. 돈을 셀 시간이 없어 마대 자루에 넣어 보관했습니다."

2007년 세탁소를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세계 금융위기가 덮쳐 연기했다. 최 시인은 카자흐스탄에서 강도를 두 번 당하는 등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최 시인은 "강도를 만나고 동포와 고려인에게 사기를 당하는 등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귀국할 생각을 했는데 아내와 두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마음을 잡았다"고 말했다.

최 시인은 강도를 당했을 때 함께 있었던 집 지키는 개에 대한 풍자시 '그라프가 늙는다-알마티 이야기 34'를 남겼다. '그라프/몸도 크지만 대가리가 기형적으로 큰 개/(…)저놈은 우리 집의 수난사를 잘 알고 있다./첫 번째 강도가 들던 날/나를 먼저 물어뜯었고/두 번째 강도가 들던 날은 달아났다./달아났다 아침에 들어왔다./생긴 것과는 다르게 개답지 못한 개/그래도 저놈을 버리지 못했다./첫정이었다(…)'.

그는 "시는 내 이야기를 통해 사람을 설득하고 그들과 아픔이나 고통을 어루만지는 과정"이라고 자신의 시 세계를 설명했다. 중앙아시아 초원에 살면서도 남진의 노래에 나오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식의 낭만적 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최석 등 결성주도 고려문화인협회

- 한글 문학 보급·문화인 발굴 힘써

   
현재 고려인 50만 명이 중앙아시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한국어로 시를 쓰고 소설을 쓰며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지화로 고려인 3~5세는 모국어에 서툴러 정체성이 희박해지고 있다.

이런 위기감에서 고려인 문학을 재건하고 지속하기 위해 2005년 8월 중앙아시아 문인협회가 태동했고, 2011년 중앙아시아 고려문화인협회로 확대됐다. 당시 고려일보 주필인 고 양원식 시인과 최석 시인이 문인협의회 결성을 주도했다. 고려문화인협회는 ▷한글문학 창작 의욕을 살리고 발표의 장으로서 '고려문화(사진)'를 발간하고 ▷사라지는 자료를 발굴하고 기록하며 ▷한글문학 보급과 문화인 발굴에 노력하고 있다. 이런 공로로 지난해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최석 김병학 윤종관 시인 같은 현지로 이주한 문인과 리 스타니슬라브 같은 고려인 3세가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리 스타니슬라브는 러시아 작가동맹의 '2010년 러시아 황금펜' 작가로 선정됐으며 그의 시는 카자흐스탄 11학년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다.


# 최석 시인은

- 한때 부산서 문화 운동지 발간도

최석 시인은 195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1987년 무크지 '현실시각' 2집으로 등단했고 1989년 첫 시집 '작업일지'(청하출판사)를 발간했다. 한때 부산에 살며 부산을 배경으로 한 문화 운동지 '아름다운 나라'를 발행했으며 '탈시(脫詩)' 동인으로 4권의 동인지를 냈다.

1996년 12월, 당시 옛 소련으로부터 분리된 신생독립국 카자흐스탄의 최대 도시 알마티로 이주했다. 카자흐스탄 한인회 사이트에 '알마티 이야기'라는 연작 시를 게재하고 있다. 지역신문인 카자흐스탄 한인신문을 창간해 초대 편집국장을 지냈다. 현재 중앙아시아 고려문화인협의회 회장과 '고려문화'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주최=롯데백화점·부산문화연구회

▶특별후원=국제신문

▶참가문의=http://문학기행.kr (051)441-0485

알마티·부룬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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