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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천하는 엘리야. |
어떤 가수가 작곡가로부터 새 곡을 받고 처음 그 노래를 부르다 죽고 말았다. 질식사였다. 작곡가가 깜빡 잊고 악보에 쉼표를 그려 넣지 않은 것이다. 단순한 조크다. 그러나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라도 쉼표가 없으면 부를 수 없는 것처럼, 쉼이 없는 인생은 참다운 인생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누굴까? 답은 간단하다. 평생 죽으라고 일만 하다 그렇게 그냥 죽어버리는 사람이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에게 정기적인 안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 다루려는 성경 속 인물은 구약에 나오는 선지자 엘리야다.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 지방은 3년 반 동안 극심한 가뭄이 있었다.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를 비롯해서 온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엘리야가 어떤 신이 참 신인지를 밝히기 위해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 850명과 대결을 벌이게 되었다. 당연히 참 신이신 하나님의 승리였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제사를 받으시고 이스라엘 땅에 큰 비를 내려주셨다. 엘리야는 그 자리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처형시켜버렸다(구약성경 열왕기상 18장 참고).
그러나 엘리야의 기쁨은 잠시였다. 진노한 이세벨 왕비가 24시간 안에 엘리야를 죽여버리겠다며 군사를 풀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엘리야의 마음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급히 광야로 도망쳤다. 정신없이 하룻길쯤 달리다 '로뎀'이라는 나무 아래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이럴 거면 차라리 여기서 지금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통사정까지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로 하여금 깊은 잠을 자게 하셨다. 중간에 잠시 깨워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마시게 하더니 또 긴 잠을 재우셨다. 그리고 다시 깨워 또 음식을 먹이더니 그를 어루만져주시며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으니 힘을 내어 갈 길을 가라고 격려해 주셨다. 엘리야는 그 길로 40일 밤낮으로 달려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새로운 사명을 받게 된다.
그렇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에게도 안식이 필요했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쉼이 필요하다. 쉼은 창조의 완성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쉼을 통해 창조주를 진정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리전트 칼리지 교수인 마르바 던은 그의 저서 '안식'에서 안식을 4단계로 푼다.
첫 번째 단계는 '그치는 것'이다. 자기 안에 있는 염려, 근심, 불안을 그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욕심을 그치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쉬는 것'이다. 정신적, 육체적, 영적, 사회적으로 휴식하라는 것이다. 안식에 대해 말할 때, 대부분은 여기까지 언급을 한다. 그러나 마르바 던은 진정한 안식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세 번째 '받아들임의 단계'와 네 번째 '축제와 향연의 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받아들임의 단계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재인식하고 그것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네 번째 단계인 '축제와 향연 단계'는 서로를 축복하고, 격려하며,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는 단계다. 기독교에서 드리는 예배가 바로 이 단계다. 엘리야는 네 단계를 다 경험함으로써 인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제 쉼의 시즌이다. 누구나 지친다. 도피하고픈 마음이 든다. 그래서 쉼이 필요하다. 잘 달리는 자동차가 좋은 자동차가 아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자동차가 좋은 자동차다. 제 아무리 뛰어난 정비사도 만든 사람을 따라갈 수는 없다.
엘리야처럼 잠시 로뎀나무 아래에서 자신의 실상을 하나님께 정직하게 아뢰어 보자. 우리의 창조주인 하나님께 내 인생의 튜닝(tuning)을 의뢰해 봄으로 진정한 안식을 경험하는 여름이 되길 바란다.
대연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