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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아르헨티나 한 가정집 벽에 나타난 '예수의 얼굴'. |
옛날에는 조직은 물론 집집이 세 마리의 '소'를 키웠다. 그 소들은 제각기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니, "옳소, 그렇소, 맞소"였다. 삼강(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부강)과 오륜(군신유의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이라는 유학의 도덕사상이 우리 사회의 근본을 이루던 그 시절엔 어떤 단체나 조직이든 '왕초'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적극적인 찬동과 수용 외에 다른 무엇이 있을 수 없었다. 어릴 적에 우리 집에도 이 소들이 있었다. 아버지 말씀은 어떠한 경우에도 반대나 의심이 용납되지 않고 즉각 실천되어야 하는 명령이었다.
오늘날엔 집집이 소가 한 마리 더 들어와 살고 있다. 그 소의 이름은 "웃기지 마소"다. 조직의 우두머리가 어떤 명령을 내리든 수용하기 어렵거나 납득이 가지 않으면 반기를 들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여성의 위상이 높아진 우리나라에서 많은 남편이 아내로부터 "웃기지 마소"의 반박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소는 자주 외출하면서 외부 사회까지 전염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얻은 별명이 있으니, 바로 "나한테 뭐 해 준 거 있소"다. 여기저기서 나이가 많다거나 좀 더 안다는 근거로 간섭이나 지적을 했다가는 이 소뿔에 받히기 십상이다.
사실 "나한테 뭐 해 준 거 있소"는 기성 사회의 많은 것을 무너뜨리고 있다. 요즘 젊은이, 특히 중고생은 이 소를 마치 애완견처럼 데리고 다닌다. 이 소는 보편 사회의 어떠한 도덕과 관습, 질서와 전통의 고유한 가치를 무시하면서 자기에게 무엇 하나 보태준 게 있느냐고 반박한다. 나아가 사회와 국가의 어떤 권위에도 복종할 줄 모르고 스스로 알아서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소가 곳곳에 설쳐대니 사회는 삭막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낯선 곳으로 변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사회는 먼저 배웠다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법조문과 약관 등이 그 시대의 모든 권위를 대변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구체적인 상황을 직면할 때 현실성이 떨어질뿐더러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인 약자를 돕지 못한다. 예수님도 자신의 파격적인 가르침과 행동 때문에 당시 유대인의 권력을 대표하는 사람들로부터 권위의 출처에 대해 도전을 받았다.
예수는 어떤 관료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특정한 직업도 없었던 그분은 나라가 보낸 특사도 아니고, 출신도 학벌도 변변찮아 자신의 인격을 내세울 만한 사회적 등급이나 위치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를 사뭇 카리스마를 가진 '랍비'(선생)라 부르기도 하고 '예언자'라 부르기도 했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무리 안에서만 통용될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과 행동에는 자기 스스로 의지와 결심이 돋보였다. 처음부터 그분의 가르침이 어떤 이름을 붙일 만한 학설도 아니었고, 모두가 따를 만한 보편적인 규범이 되지도 못했다. 하지만 실존적이고 독창적인 그분의 가르침과 행동 안에는 그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한 계획을 향한 확신과 결심이었다. 이것은 다름 아닌 당시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헌신적인 사랑의 힘이었다. 물론 이는 예수에게 자신을 내어맡기는 자들에게만 작용하는 힘이다.
우리 세상도 헌신적인 사랑의 힘이 하나의 권위로 통용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천주교 몰운대 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