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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문학기행 <16> 소설가 박범신과 함께하는 논산 문학기행

본능적 갈망엔 나이가 없다… 그대의 젊음은 영원할까

  • 오상준 기자 letitbe@kookje.co.kr
  •  |   입력 : 2012-05-29 19:36:50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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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범신이 충남 논산 자신의 집 정원에서 문학기행 참가자들에게 문학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 '은교' 미쳐, 한 달 반 만에 다 써
- 촐라체·고산자 등 갈망의 3부작
- 소설엔 영화가 담을 수 없는 깊이가
- 문학은 상처·소외·결핍에 바탕
- "사랑보다 큰 권력이 없음을 절감"
- 고향 논산에서 새로운 싸움 시작

최근 개봉한 영화 '은교'가 화제다.

소설가 박범신이 2010년 쓴 소설 '은교'가 원작이다. 이 소설은 노 시인 이적요와 제자 서지우, 그리고 여고생 한은교가 등장해 욕망과 나이 듦에 관한 성찰과 슬픔을 미학적으로 담았다. 지난 27일 소설가 박범신과 함께하는 충남 논산 문학기행은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은교'에 대한 참가자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갈망'은 내 문학의 화두

   
소설가 박범신의 집 입구 '은교 조각상'.
소설가 박범신은 "'은교'를 쓸 때 미쳤다"고 털어놓았다. 장편소설을 불과 한 달 반 만에 썼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생성된 날 선 문장이 포악스럽게 나를 앞으로 밀고 나갔어요. 한없이 슬펐고, 한없이 충만했죠. 다 쓰고 났을 때, 몸 안에 무엇인가, 이를테면 내장이 쑥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자신을 사로잡은 화두가 '갈망'이라고 했다. "'촐라체'와 '고산자' 그리고 이 소설 '은교'를 저는 '갈망의 3부작'으로 부릅니다. '촐라체'에서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인간 의지의 수직적 한계를, '고산자'에서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꿈을 다뤘어요. '은교'는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탐험하고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 '은교'는 갈망의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죠."

갈망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는 "갈망은 아득히 그리운 것으로, 욕망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욕망은 너도나도 넓은 아파트와 좋은 자동차를 사고 싶은 거죠. 자본주의 구조가 주입해 놓은 외부로부터의 욕망입니다. 좋은 집과 차를 소유하더라도 행복해지는 건 아닙니다. 사랑의 완성과 유지, 영원성과 불멸 같은 보다 근원적인 것에 대한 추구가 갈망이에요."

그는 "나이와 상관없이 오욕칠정(五慾七情)은 인간의 본능적 갈망"이라고 강조했다. "내 나이 67세인데 늙는 것이 서럽고 해서 젊은이를 보면 패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은교'에서 노 시인 이적요가 여고생 은교와 교외 카페에서 첫 데이트를 하려는데 늙었다는 이유로 못 들어가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노인을 '기형'으로 취급해 세대 차이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은교'에서 보들레르의 시를 인용하며 "젊은 너희의 아름다움이 너희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듯이 늙은이의 주름살도 늙은이의 잘못에 의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라고 외친다.



'쭈글거리는 노파는

귀여운 아기를 보자 마음이 참 기뻤다

모두가, 좋아하고 뜻을 받아주는

그 귀여운 아기는

노파처럼 이가 없고 머리털도 없었다'.

-(보들레르 '노파의 절망'에서)


■'은교' 스크린셀러 유감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박범신 문학비'.
그는 자신의 소설 20여 편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나서 영화나 TV 드라마로 제작됐다고 했다. '은교'는 사정이 다르다. 2010년 소설 출간 당시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가 최근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관심을 끌고 있는 '스크린셀러(screen seller)'다. 스크린셀러는 영화를 뜻하는 스크린과 베스트셀러를 합친 신조어다. "예전에는 소설이 잘 팔리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이제 영화가 인기를 끌어야 소설이 잘 팔리는 것 같아 씁쓸해요. 소설은 영화에서 담을 수 없는 깊이가 있어요. '은교' 영화를 150만 명이 봤다면 소설은 적어도 배인 300만 부 팔렸으면 합니다."

그는 영화 '은교'를 제작한 정지우 감독에게 "노인 포르노 영화를 만들지 마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노 시인은 은교를 사랑하지만 한 번도 해보지 못했어요. 은교는 오히려 소설 에필로그에서 '할아버지가 이렇게 갖고 싶어하는지도 몰랐다고요. 이까짓 게, 뭐라고요'고 말할 정도로 줄 준비가 다 돼 있었죠. 그래서 내가 '꿈, 호텔 캘리포니아'에서 꿈속에서라도 은교와 육체적 사랑을 나눌 기회를 준 것은 노인에 대한 헌사에요." (웃음)

영화를 몇 번 봤을까. 그는 "영화를 세 번 보고서야 영화의 디테일과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노 시인의 고독에 초점을 맞춘 슬픔에 관한 소설인데 영화가 노인의 순정에 맞춰져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에는 지식인의 이중성, 문화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문학관: 단독자로 휴머니즘 추구

그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언급하며 "문학이란 상처, 소외, 결핍을 뿌리칠 수 없다"고 밝혔다. "어머니가 마흔한 살에 저를 낳았습니다. 1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난 전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지만 젖을 흡족하게 먹지는 못했어요. 장돌뱅이로 떠돌아야 했던 아버지의 부재로 집안은 늘 화목하지 못했어요. 늘 불 꺼진 우리 집에 들어가지 않고 건너편 창호지 너머로 단란한 이웃집을 동경했죠. 문학은 궁핍하고 모자라고 상처투성이를 기록하는 겁니다. 작가는 어느 정파나 '문파'에 속하지 않는 '단독자'로서 창 너머 세상을 잔인한 관찰력과 웅숭깊은 통찰력으로 창 안쪽에서 내다보면서 휴머니즘과 문학순정주의 노선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영원한 청년작가'

그는 지난해 가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논산에 내려와 살고 있다. 그는 "노년의 무위자연이나 안빈낙도를 위해 고향에 온 것이 결코 아니다"며 "새 출발 하는 마음가짐으로 논산을 새로운 문학의 싸움터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논산일기 2011 겨울'이라는 산문집을 내며 문학적 열정을 재점화했다. 그는 "내 인생의 마지막 승부는 은교가 아니라 사랑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사랑보다 큰 권력이 없음을 새삼 절감합니다." 그는 불멸의 사랑을 좇는 영원한 청년작가다. 문학기행에 동행한 황명선 논산시장은 "박범신 문학관을 짓겠다"고 말했다.


# 문신·은교 조각상·문학비

- 박범신을 이해하는 3가지 코드

   
소설가 박범신은 67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은 열정을 뽐냈다. 청바지에 드레스 셔츠 차림이다. 강의가 끝나자 셔츠를 벗어 왼쪽 팔뚝에 새겨진 문신(사진)을 깜짝 공개했다. 헤나(특수 물감으로 피부에 그리는 지워지는 문신)와 달리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소설 '은교'에는 여고생 한은교가 가슴에 창(槍) 모양의 헤나가 있고, 은교는 노 시인 이적요에게 헤나를 새겨주는 대목이 나온다.

그의 논산 집 입구에는 하늘색 스웨터 차림에 목걸이를 하고 분홍색 양말을 신은 소녀 청동 조각상이 의자에 앉아 있다. 그는 "후배 조각가가 선물해준 '은교 조각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산문집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논산일기 2011 겨울'에서 은교 조각상을 논산 집의 '경호실장'으로 표현했다. 그는 "나이에 상관없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고개가 돌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황산공원에 있는 박범신 문학비는 특이하게도 약간 기울어 있다. 강경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이 강경읍을 배경으로 개발시대를 그려낸 박범신의 장편소설 '더러운 책상'(2003)과 그의 문학 세계를 기리고자 건립한 것이다. 그는 '더러운 책상'으로 제18회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문학비를 건립하시는 분들이 제 문학 세계가 삐딱하다고 해서 약간 기울게 세웠다"며 "권력 있는 사람에게 무릎을 꿇은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소설가 박범신

소설가 박범신은 194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원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67~1973년 고향에서 초·중학교 교사를 지냈다. 1995~2004년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활동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여름의 잔해'로 등단한 이래 '불의 나라' '물의 나라' '겨울강 하늬바람' '빈 방' '나마스테' '풀잎처럼 눕는다' 등 40여 편의 작품을 내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특히 1993년부터 3년간 절필을 선언하고 문학과 삶의 존재에 대해 겸허한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주최=롯데백화점·부산문화연구회

▶특별후원=국제신문

▶참가문의=http://문학기행.kr (051)441-0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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