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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굴 속의 다니엘 |
나라가 늘 어수선하다는 생각이 든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마음이 모질어지고, 전투적이 되어 가는 느낌이다. 근대화, 민주화, 선진화로 가는 과정에 부득이 하게 겪어야 할 현상일 것이다. 그래도 그 정도가 심하다. 그래서 이젠 피곤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짧은 식견에도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그다지 크지 않은 교회를 목회(牧會)하면서도 수많은 일들을 겪는다. 교회 구성원들이 다양하다. 넉넉하게 사는 사람, 어렵게 사는 사람, 성격 급한 사람, 느긋한 사람, 많이 배운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 등 다양하게 모여 있다 보니 종종 갈등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늘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있다.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생각하자'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하자' '어떤 상황에서도 정직하자'. 이런 마음으로 접근해 가면 웬만한 일들은 큰 무리 없이 해결된다.
오늘 성경 속 인물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다니엘이다. 한 마디로 다니엘은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을 제대로, 바로 믿어보자'는 것을 자기 삶의 원칙으로 정하고 실제 그렇게 산 사람이다. 종종 기독교인들이 비난을 받는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도 적어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질책이다. 그런 마음은 인정해 주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해 주는 책망은 달게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기독교인의 입장에선 속상하다. 왜 그런 말을 듣게 되었을까. 답은 간단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제대로, 바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바로, 제대로 믿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하나님을 진짜로 믿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 사람은 단지 교인(敎人)일 뿐이다. 성도(聖徒)가 아니다.
다니엘은 약 20세에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잡혀갔다. 포로 신분이었지만 워낙 신실하고 지혜로웠으며 학문에 탁월해 느부갓네살 왕 때에 참모로 발탁된다. 나중에는 페르시아 제국 고레스 왕에 이르기까지 두 나라, 네 왕을 고위 관료로 보좌하게 된다. 그가 이방인의 신분으로 그런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처세술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로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자신의 원칙과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런 다니엘을 다른 신하들이 좋게 볼 리가 없었다. 수많은 비방과 모함이 있었다. 페르시아의 고관들은 다니엘을 시기해 그를 함정에 빠뜨릴 계략을 꾸몄다. 그들은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다리오 왕을 꼬드겨 누구든지 왕 외에 어떤 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는 기도를 하면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 넣는 법령을 만들게 했다. 다니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다니엘을 총애했던 다리오 왕이지만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게 되었다. 절대 권력이라는 페르시아의 왕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달랐다. 그런 다니엘을 하나님은 기특하게 보셨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굶주린 사자들이 다니엘을 조금도 건들지 못하게 보호하셨다. 모든 상황을 파악한 다리오 왕은 오히려 다니엘을 참소(讒訴)한 사람들을 사자굴에 던져 사자의 밥이 되게 했다.
왜 일이 꼬이고 어수선 해지나. 상황에 따라 소신을 저버리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편법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대의를 지켜야 한다. 힘든 때일수록 바른 소신을 갖고 살아야 한다. 원칙에 충실하다 보면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과정이 있지만 진리는 반드시 드러난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 이것이 가장 좋은 처세술이다. 이것이 나라가 바로 되고 온 국민이 살 길이다. 오늘도 하나님께 그런 나라, 그런 국민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다니엘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대연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