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의 허위보도라고 하면 반드시 어떠한 사실을 날조한 경우에만 한하지 않고 어떠한 사건의 연속 중에서 일부분을 고의로 묵살해버린다거나 그와 반대로 강조해서 표현하는 것은 독자의 판단을 어긋나게 함에 있어서 허위보도와 조금도 다를 것 없을 것이다. 일기를 쓰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나는 늘 가지게 된다'.(1946년 4월 22일 일기 중)
역사학자 김성칠(1913~1951·사진)은 홀로 내밀하게 쓰는 일기에서도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엄정함을 고민했다. 역사 앞에서는 그가 해방 직후인 1945년 12월부터 6·25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1951년 4월까지 남긴 일기를 모은 책이다. '역사 앞에서'는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책일 수 있다. 1993년 창비에서 같은 제목으로 처음 출간돼 독자들 마음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어갔던 이력이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6·25전쟁 59주년을 맞이한 이 즈음 창비는 '역사 앞에서' 개정판을 냈다. 개정판에는 이화여대 정병준(사학과) 교수가 저자 김성칠의 삶과 그가 남긴 일기가 갖는 의미를 해설한 상세한 해제를 써서 추가했고 본문에 나오는 인명과 사건 등에 대해 풍부한 주석까지 달았다. 그 덕분에 초판에 비해 훨씬 친절하고 두터워졌고 일기만 수록했던 초판을 통해서는 짐작하기 힘들었던 학자로서 김성칠의 위치와 업적, 그의 일기가 갖는 역사적·문헌적·문화적 가치를 통찰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과거에서 배웠나'하는 환기 효과도 강렬하다.
'역사 앞에서'의 부제는 '한 학자의 6·25일기'다. 김성칠은 극렬하던 당시 좌우 대립 속에서도 어느 한 쪽에 쏠리지 않으면서 질박하고 담담하며 깨끗한 삶을 살려고 애쓴 학자였다. 그러면서도 인문학자로서 민족공동체의 운명에 대해 깊이 걱정하고 고뇌했다. 그런 면모를 일기는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일기는 북한군에 점령된 서울에 남아 '인공 치하'를 살아낸 학자가 남긴 기록으로서 어떤 역사책보다 당시 상황을 생생하고도 균형감 있게 증언하는 희귀한 사료이기도 하다. 서울로 쳐들어온 인민군이 민중을 대상으로 펼친 문화정책은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그 일방성을 지적하고, '좌우가 바뀐' 상황에서 인심마저 뒤틀리는 모습을 묘사한 것 등은 현장감이 생생하다. 6·25 전황을 서울 시민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전쟁 첫날부터 기록한 점은 이 책이 갖는 소중한 사료로서 가치다.
'이념에 채색된' 역사가 아니라 맨얼굴 그대로 역사를 증언한다는 점에서 초판 출간 때부터 이 책은 관심을 모았다.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를 접한 소감을 '이 일세의 재자(才子)의 풍모는 내가 평소에 그린 바와는 다소 달랐다'고 밝히거나 1945년 유엔의 한반도 신탁통치 결정에 대해 온국민이 반발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상점에는 통분휴업(痛憤休業)이라는 문구를 써붙였다'며 '조선사람의 보조가 이렇게 일치하는 것만이 대견히 여겨졌다'고 소회를 밝힌 대목 등 흥미진진하다. 이 책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책 세 권이 떠오른다 . 이순신의 '난중일기',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다. 진솔한 내면의 기록인 이 책들과 견줘도 '역사 앞에서'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