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객장에 애 업은 주부가 나타나면 주가가 상투라는 얘기는 증시와 관련된 해묵은 속설 중 하나다. 요즘은 다들 인터넷을 통해 주식거래를 하니 주부 역시 증권사 객장에 나타날 필요가 없다. 이제 아파트 부녀회 뒤풀이 자리에서의 최고의 안줏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수익 펀드였다. 종목을 잘 찍은 아무개가 남편 월급을 초월하는 수익을 올렸다는 '아파트 부녀회발' 소식이 하도 무성해 펀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진 엄마라는 우스갯소리가 언론에 흘러다녔다. 불과 서너개월 전 상황. 그렇지만 '미국발' 금융 위기가 확장된 후 빠른 속도로 이런 풍경은 사라져 가고 있다.
가을이 물러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찾아들어 사람들을 움츠려 들게 하는 우리나라의 날씨와 작금의 경제 한파는 닮았다. 그 앞에 선 '애 업은 주부'나 지갑이 얇디얇은 월급쟁이는 힘없는 경제 약자일 뿐이다. 지금 이미 이렇게 추운데 내년은 더욱 살을 엘 것이라는 경제 전문가의 진단이 남엣소리같지 않다. 어떻든 대책이 필요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불면의 밤을 지내는 직장인들이 수두룩하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간들은 시대의 흐름을 탄다. 근래 책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신간은 지금같은 경제 빙하기의 초입에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책이다. 열한 살짜리 소녀 조지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재앙이 닥친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빠는 사라져 버렸고 집안에 남은 돈이란 마요네즈 통안에 든 1달러짜리 지폐 한 장과 25센트 동전 세 뭉치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집주인은 집세를 내지 않았다며 조지나와 남동생 엄마, 세 식구를 거리로 내쫓는다. 졸지에 '집도 절도 없는' 처지에 빠져버렸다. 꼭 요즘같은 전 세계적 경제위기 아래 이런 가정들이 쏟아질 것으로 예견하고 쓴 듯한 소설이다.
작가는 거리로 나앉은 조지나 가족의 고군분투기를 익살스러운 필치로 엮어나간다. 가족해체란 무거운 주제를 너무 낙관적으로 다루지 않느냐는 지적이 제기될 정도로 작가는 역경을 이겨나가는 해법을 밝게 그려놓았다.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은 가족애라는 것이다. 맞는 얘기다. 실제로 이런 일이 현실로 나타났을 때 가족간 사랑과 신뢰는 훌륭한 보호막일 것이며, 막상 그런 상황에 처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처방을 따르게 돼 있다. 하지만 그 보호막이 마냥 두껍지 않고 그리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걸 알고 그 가족들을 구출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그 일을 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11년 전 한국은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당해 많은 가정이 해체됐다. 그 결과는 주위를 둘러보면 잘 알 수 있다. 위기를 극복한 가정도 있지만 영구적인 장애를 입은 채 지금도 힘들어 하는 사람이 참 많다. 극단적인 예 일는지 모르겠으나, IMF사태 때 직장을 잃은 가장의 아픔을 지켜봐야 했던 청소년이 이제 청년 실업자가 돼 아버지와 같은 고통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 왜 없겠는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정들이 일어서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동안 그 '누군가'는 제 할일을 해내야 한다.
그 '누군가'중 제일 앞열에는 나라 경제를 책임진 권력들이 포진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엄동설한을 견뎌 나가는 동안 고통지수만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여야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을 부여받은 이들이다. 이 땅에 가족 해체라는 트라우마는 한 번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