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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사천의 늑도 유적 12호 주거지 및 온돌시설. 심봉근 동아대 박물관장 제공 |
경남 사천시 늑도동 늑도유적(사적 제450호)은 기원전 2세기 무렵 두만강 유역에 거주하던 고조선 유민들이 해로를 통해 이동해 와 생활했던 곳이라는 논문이 발표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심봉근 동아대 박물관장(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은 최근 '석당논총' 제37집에 '사천 늑도유적 C지구 주거지와 출토 토기 분석' 주제의 논문을 통해 '두만강 유역에는 원형주거지, 터널형 온돌, 점토대토기 등을 갖춘 철기문화 집단이 있었으며, 그들은 해로를 통해 늑도에 와 생활한 고조선 유민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증빙자료로 온돌 시설을 먼저 들고 있다. 늑도의 수혈식 주거지 중 방형보다 시기가 늦은 것으로 추정되는 원형에서 판석(넙적한 돌)으로 조립한 터널형 온돌이 발굴조사 됐다는 것이다.
심 관장은 "두만강 유역의 함경북도 무산 호곡동 유적이나 러시아 연해주 접경지역인 블로치카 유적에서 기원전 4~3세기로 편년되는 초기 철기시대의 크로노프카 문화층에서 온돌시설을 갖춘 원형 주거지가 조사됐다"며 "그 남쪽의 육로를 통한 지역에는 아직까지 그런 시설이 확인되지 않고 유독 늑도에만 나타나기 때문에 그곳에서 바로 늑도로 건너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 관장이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고조선 유민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그 인근 이즈웨스토프 유적에서 철기문화 수용기의 표지적인 유물 중 하나로 기원전 3세기께로 편년되는 한국식동검과 점토대토기가 함께 출토됐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고조선 유민들은 늑도에 정착한 후 일본·낙랑 등과 교류, 그 흔적으로 늑도에 낙랑토기와 일본 야요이토기, 중국 화폐인 반량전과 오수전 등을 남겼다.
기원전 2세기가 중심시기인 늑도는 특히 삼각형 점토대구연을 가진 무문토기가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대표 유적 중의 하나이다. 점토대토기는 단면 원형에서 삼각형, 장방형으로 변화하며, 삼각형의 것을 '늑도식'이라고 학계에서 부를 정도로 많이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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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봉근 동아대 박물관장 |
심 관장은 이런 변화 과정에서 점토대토기가 낙랑토기, 야요이 토기와 접촉을 했으며, 특히 삼각형 점토대토기는 일본 서북 큐슈지방 야요이 중기 토기 형성과정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을 것으로 본다. 그는 이런 과정에서 점토대토기를 모방해 야요이토기를 제작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는 두 토기가 편년상 거의 동일시기에 해당하고, 유행하는 지역이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과 일본 서북 큐슈지역이라는 지리적 근접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늑도에서 출토된 외래적 요소가 있는 낙랑식 토기와 야요이 토기는 생활용기보다는 제사용의 의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늑도에서 동물뼈로 점을 치는 복골(卜骨)이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사실과도 연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늑도 유적은 경남 남해 창선도와 사천시 삼천포항을 연결하는 국도 3호선 예정부지 내에 유적 일부가 포함돼 부산대와 동아대, 경남고고학연구소 등 3개 발굴기관이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조사했으며, 동아대는 그 중 패각층과 주거지가 비교적 밀집된 C지구를 조사했다.
심 관장은 18일 "두만강 유역의 무문토기 문화와 온돌을 사용하던 고조선 유민들이 해로를 통해 늑도로 이동했으며, 그 배경에는 당시 전국시대 연(燕)나라의 동쪽 진출이나 한(漢)나라의 영토 확장 등 동북아시아의 정치 상황이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늑도 - 경남 사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