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조선후기 문인초상 |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29일 '조선후기 문인초상'(보물 제1498호) '이덕성 초상 및 관련자료 일괄'(보물 제1501호) '박문수 초상'(보물 제1189-(2)호) 등 31건의 초상화와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보물 제1507호) 등 총 39건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2일 밝혔다.
위의 보물 지정 초상화 3점의 소장자는 부산 사람이다. '조선후기 문인 초상'과 '박문수 초상'은 모 기업체 S회장이 소장하고 있으며, '이덕성 초상 및 관련자료 일괄'은 원로 고고역사학자 L씨가 소장하고 있던 가문의 유품이다.
 |
| 박문수 초상 |
문화재청에 따르면 '조선후기 문인초상'은 분홍색 시복을 입고 화문석에 앉아 있는 좌안팔분면 좌상으로, 얼굴은 약간 화면의 좌측으로 치우쳤고 눈을 아래로 깔고 명상에 잠겨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림 속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체적으로 매우 섬세하고 정교할 뿐 아니라 인물의 품성까지 잘 드러내주는 수작이다. 18세기 후반 초상화의 특징을 잘 보여줌과 아울러 원래 표장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박문수 초상'은 그림과 발문이 같이 있다. 영성군(靈城君) 박문수(1691~1756)는 조선시대 어사(御使)의 대명사로 일컬어진다. 박문수는 38세인 1728년 분무공신상(奮武功臣像)을 하사받았으며, 이때 공신상으로 그려진 전신상과 반신상이 충남 천안의 후손가에 전해져 1994년 2점 모두 보물 제1189호로 지정됐다. 이번에 지정된 박문수 반신상은 1품관이 착용하는 대를 착용하고 얼굴도 노년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여러 자료 등을 감안할 때 1751년에 그려진 것으로 평가됐다.
 |
| 이덕성 초상 |
'이덕성 초상 및 관련자료 일괄'의 이덕성(1655~1704)은 본관이 전북 전주로 1682년 춘당대시에 병과로 급제했으며 동래부사, 해주목사, 황해도관찰사, 충청감사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이덕성 초상'은 높은 오사모에 녹색 단령을 입고 좌안칠분면의 자세로 교의에 앉은 모습이며 배경은 없다. 이덕성 관련 고문서는 교서 3점, 유서 3점, 교지·교첩 114점, 시권 1점 등 모두 121점으로 백패와 홍패를 비롯해 관직을 제수받았을 때의 관련교지가 흩어짐 없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이덕성의 이력사항 및 전기자료로서 사료적인 가치가 있으며 인사·행정에 관한 연구자료가 된다.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는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인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진주목사 김시민(1554~1592)에게 내린 선무공신 교서이다. 이 공신교서는 김시민 장군의 공적과 그에 따른 포상내역이 자세히 언급돼 있을 뿐 아니라 현존하는 선무공신교서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것으로 임진왜란사 연구와 고문서 연구의 중요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