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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막부의 지시로 쓰시마 번에서 1711년 화가 다와라 키자에몬의 주관 하에 40명의 화가가 동원돼 141일 간에 걸쳐 통신사행 그림을 14벌 제작했다. 그 중 국사편찬위원회가 4벌을 소장하고 있다. 위 그림은 4벌 중 '등성행렬도'의 일부로 그해 11월 1일 에도성으로 국서를 전달하러 가는 장면이다. |
올해 2007년은 임진왜란 이후 단절됐던 한일 관계가 성신교린(誠信交隣)의 정신을 바탕으로 재개돼 200여년 간 화평의 시대를 맞이하는 계기로 작용했던 조선통신사 파견 4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당시 500명 가량의 통신사 사행(使行)은 부산에서 해신제를 지낸 후 6척의 배에 나눠 타고 출발, 일본 최고 실력자인 막부의 쇼군(將軍)이 있던 에도까지 일본의 20여개 주(州) 50여 개의 도시를 왕복 6개월(5개월~2년) 이상의 여정을 거친 후 부산으로 돌아왔다.
통신사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보고, 한일 양국의 새로운 문화교류로 일컬어지고 있는 통신사의 각종 사업과 앞으로의 과제와 지향점 등을 점검해 본다.
▲조선시대 통신사 사절단, 일본에 큰 문화 충격
1719년 통신사 사행의 일원이었던 서기 김인겸의 말을 한 번 들어보자. 그는 오사카의 숙소였던 니시혼간지(西本願寺)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일동장유가'에 적고 있다. '…사력을 다하여 질풍같이 붓을 휘두른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종이를 꺼내 놓는 바람에, 쌓으면 턱에 닿을 정도였다. …우리를 만나려는 일념으로 200, 300리나 떨어진 곳에서 식량까지 가지고 여기까지 와서 5, 6개월이나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글을 써 주지 않는다면, 그 낙담은 얼마나 클 것인가.…(일본인들에게 주기 위해) 시를 짓는데 닳아버린 붓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이처럼 통신사 일행의 글과 그림을 받기 위한 일본인들의 바람이 얼마나 컸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의 그림도 하나 보자. 에도(江戶)의 인기 화가였던 하나부사 이쵸우가 그린 '마상휘호도'에는 1711년에 있었던 통신사 행렬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소동(小童)에게 달려가 붓, 먹, 벼루를 내놓고 양손으로 종이를 받쳐들고 머리 위로 높이 펼쳐서 휘호를 부탁하는 장면이 있다. 순간, 놀란 소동은 말 위에서 붓을 잡지 않을 수 없었고, 종이 옆으로 얼굴이 반쯤 보이는 마부의 득의양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에 걸쳐 일본에 파견됐다. 이 중 1607, 1617, 1624년의 1~3차 파견은 '통신사'가 아닌 '회답겸쇄환사'라는 이름으로 다녀왔다. 이러한 데는 일본에서 먼저 보내온 국서에 답하고, 피랍된 조선인을 귀환시킨다는 의미 때문이었다. 1811년 통신사의 마지막 사절단은 에도까지 가지 못하고, 예외적으로 쓰시마 섬까지만 갔고, 쓰시마 도주의 저택에서 막부 장군이 파견한 막부의 관리와 쓰시마에서 국서를 교환했다. 이에 대해 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교수는 '조선통신사, 일본과 통(通)하다' 제목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들고 있다. '당시 막부는 통신사 접대의 막대한 경비(당시 1회 사행에 금 100만 냥, 현재의 7000억 원가량)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조선멸시관을 내세워 통신사 연기의 명분을 합리화시킨 후, 그 대안으로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쓰시마 섬에서 국서 교환의 절차를 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글과 시문, 그림, 예능에 뛰어난 사람들을 파견해 달라는 일본의 요청에 의해 1682년 통신사부터 문서담당 제술관이 추가됐다. 다양한 예능인을 포함한 문화사절단으로서의 색채가 짙은 통신사의 왕래를 거주지의 노상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최대의 화제였던 것이다. 또 사행으로부터 받은 글과 그림은 자손들에게 '가문의 영광'으로 자자손손 전해졌다.
통신사 연구자인 한태문 부산대 국문과 교수는 통신사의 문화교류 부문에 대해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진정한 세계화란 자기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통신사는 바로 이 진솔한 마음의 교류를 통해 상대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극복하고 상호 이해의 우호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국제 외교사상 찾아보기 힘든 모범적인 문화사행의 전례를 남긴 것이다'.
▲오늘에 되살린 조선통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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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29일 일본 도쿄 중심가인 니혼바시(日本橋)에서 242년 만에 조선통신사 행렬이 재현되고 있다. |
2003년 3월 7일 부산시청 1층 대회의실에서 당시 강남주 부경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선통신사 문화사업추진 위원회' 창립회의를 갖고, 부산시 문화관광국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실행위원회와 총괄기획, 학술, 재현행사, 문화교류 등 4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했다. 그 전인 2002년 9월 쓰시마 섬에서 강남주 현 통신사 문화사업회 집행위원장과 마츠바라 가스유키 일본 통신사 연고지협회장이 '조선통신사 문화사업회 상호협력 조인식'을 가진 게 지금의 조선통신사 문화사업회의 시발점이 됐다. 이어 2003년 9월 21일 창경궁 명정전에서 3사(使) 임명식이 열리고, 22일부터 10월 25일까지 통신사 한일문화교류 축제가 국내와 일본에서 첫 개최됐다.
문화사업회는 2005년에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의 행렬'을 주제로 일본에서 8월 6~7일 '쓰시마 아리랑 축제'와 8월 20~21일 '시모노세키 바칸마츠리', 10월 '도쿄 성신교린의 축제'에 참가하는 등 행사를 다양화해 나갔다.
2006년 4월에는 조선시대 때 통신사가 지나갔던 지역의 국회의원 30여 명이 모여 조선통신사 국회의원 연맹이 창립됐다. 8월에는 '시모노세키 바칸 마츠리' 행사 중의 하나로 통신사 행렬을 재현했고, 10월에는 도쿄에서 열린 '제34회 니혼바시·교바시 축제'의 일환으로 통신사 행렬이 재현돼 일본인들의 환호를 받으며, 242년 만에 니혼바시(日本橋)를 지났다는 큰 의미를 갖기도 했다. 2007년에는 9월에 부산 용두산공원 일대에서 개최하던 행렬 재현 행사를 5월 일본의 '자팬 위크' 기간 중에 갖기로 했다. 일본 관광객을 한 명이라도 더 불러들이겠다는 의도에서다.
▲부산발 한류 브랜드가 되려면
강 집행위원장의 "조선시대 당시 통신사가 불구대천의 원수관계였던 한일 양국의 관계를 평화의 시대로 바꾼 만큼, 냉랭해지는 지금 시대의 한일관계를 통신사 행사를 통해 순수문화 차원에서 풀어나가길 원한다"는 말처럼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우선 통신사 행렬이 일본에서 재현될 때 일본인들이 '또 다른 한류'로 감탄을 할 정도로 호응을 보이고 있으나, 정작 정부 차원의 지원은 줄어들고(사업회 예산 2005년 10억 원→ 2006년 9억 원) 있어 사업이 축소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부나 부산시가 통신사를 문화상품 또는 관광상품으로 만들지 못하고, 그저 부산의 한 사업회가 주도하는 행사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 측이 오히려 통신사 관련 박물관과 전시관을 건립해 역으로 한국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통신사 행렬을 인형 등 각종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등 하나의 거대 문화상품으로 적극 이용하고 있다.
김동철 부산대 사학과 교수 등 관련 전문가들은 "통신사를 하나의 문화 아이템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통신사 박물관 등의 건립이 최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부산시 관계자는 "우리도 동감하지만 예산 증액이 어려워 쉬운 일은 아니다"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부산을 팔아먹을(?) 마지막 상품이 통신사와 통신사와 관련이 있는 왜관"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강남주 집행위원장
- "일본서 더 큰 관심 문화상품화 부러워"
"일본 측에서 통신사 사절단 파견 400주년을 맞아 무슨 무슨 행사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전해올 때면 한편으로 기쁘기도 하지만 사실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강남주(전 부경대 총장·사진) 조선통신사 문화사업회 집행위원장은 정작 통신사를 파견한 주체는 우리인데, 일본이 오히려 기념 행사에 더 관심을 갖고 문화상품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마음이 쓰리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국회의원들까지 나서 통신사 파견 400주년 기념 행사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당에 우리는 많지 않은 예산인데 그것마저 삭감을 하고 있지요. 가장 절실한 건 정부의 관심"이라는 강 위원장의 조심스런 말처럼 정부 측에서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문화 행사 중 하나 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생각에 문제가 있다.
"일본에서는 통신사 행렬이 재현될 때마다 '새로운 한류'라고 크게 반기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와 사업가들은 통신사 행렬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 '돈'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통신사 박물관 건립이 시급하고, 이와 동시에 당시 부산에 있었던 왜관을 상품화 하는 프로그램도 빠른 시일 안에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강 위원장은 "자칫하면 그런 것마저 일본에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