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국제화 시대에 맞지 않는다
바둑이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고 있는 국제화시대에서 외국인과 바둑을 얘기할 때 곤혹스런 문제가 하나 있다. 바둑의 목표인 '집'이란 말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각자의 돌로 에워싼 공간을 '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영토(territory)'라는 말로 통한다. 따라서 우리 식의 개념으로 집을 'house'라고 번역하면 서양인들은 눈을 휘둥그레 뜬다.
사실 바둑의 목표인 영역을 '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좀 부적절한 느낌이 든다.
 |
| 1도 |
(1도) 이 그림에서 좌상귀의 모양을 우리는 흑집 상변의 모양을 백집이라고 부른다. 각자의 돌로 에워싸 울타리를 만들었지만 아무리 봐도 집처럼 생기진 않았다. 경계선을 만들어 영토를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적당할 것이다.
에워싼 영역을 집으로 간주하는 것은 전투의 개념이 들어갈 때 더 이상한 느낌이 든다.
 |
| 2도 |
(2도) 흑의 영역에 백1로 뛰어들어 공방전이 벌어진 모양이다. 흑집을 깨뜨리기 위해 도둑처럼 백이 뛰어들고 흑은 그것을 잡기 위해 공격을 한다고 하면 아주 이상할 것은 없지만, 집을 놓고 생사를 건 혈투를 벌인다는 것이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긴 우리 한국은 정부가 투기억제를 위한 전쟁까지 벌일 정도로 부동산에 대해 지대한 애착을 갖고 있는 부동산 공화국이니 바둑의 집 쟁탈전에 비유해도 이상하게 느낄 사람은 없다. 바둑의 목표를 집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 중 이견을 제시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외국인의 눈에는 집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개념인 것 같다. 일본에서는 땅이나 영역을 가리키는 '지(地)'를 사용하며 개개의 집은 '목(目)'이라고 한다.
우리도 에워싼 전체 영역을 가리킬 때는 '영토'라고 부르고 개개의 영토를 '집'이라고 부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우상귀 흑의 영토는 15집'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면 딱 어울리는 것 같다.
필자는 바둑이론을 정립하면서 집이란 표현이 상당히 불편하다고 느꼈다. 바둑을 정의하면 '영토전쟁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집차지 싸움이라고 표현하면 어색할 경우가 많은 것이다.
또한 바둑을 배우는 사람에게 '집'이라는 개념으로 가르치면 바둑을 잘 못 이해할 가능성도 있다.
영토란 말은 전쟁현상이 내포된 말이나 집은 전쟁의 개념이 들어있지 않다. 종종 바둑을 '집짓기'에 비유하는 사람이 있는데 실은 바둑은 집을 짓는 게임이 아니라 돌들의 싸움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집'이란 말이 바둑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도전에 직면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말을 고집하면 국제적인 감각에 맞지 않은 고립된 개념을 갖게 된다. 그 말이 바둑이론으로나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면 새로운 시대에 맞게 조정을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