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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도〉 |
바둑의 룰 중에서 '패'는 매우 독특한 규칙이다. 상대방이 한 점을 따낼 경우 곧바로 되따낼 수 없고 어딘가 한 번은 팻감을 쓰고 나서 다시 따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일 팻감을 안 쓰고 패를 즉시 되따내면 당연히 반칙이다. 아마추어들은 이런 반칙을 범하는 일이 극히 적다. 그러나 전문직업선수인 프로기사들은 이따금 팻감을 쓰지 않고 패를 따내 반칙패를 당하는 경우가 생긴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에서도 그런 일이 나왔다. 중국의 고수인 쓰야오궈 7단이 김승준 9단과의 예선 대국에서 패를 하던 중 팻감을 쓰지 않고 따내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집중력이 뛰어난 고수의 바둑에서 이런 반칙이 나온다는 것은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팻감의 수를 계산하며 수읽기를 하다가 팻감을 썼는지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들은 대부분 팻감을 계산하지 않고 패를 하기 때문에 팻감 쓸 차례를 잊어버리는 일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참고도) 이런 상황에서 흑1·백2 다음 흑3으로 패를 따냈다고 하자. 이 경우 바둑팬들은 백A에 찌르는 절대 팻감을 즉시 결행할 것이다. 일단 상대가 받지 않으면 안 될 곳을 두어 패를 이길 생각을 한다.
그러나 프로들은 이 상황에서 백A를 즉각 두지 않는다. A에 팻감을 쓴 다음 이 패싸움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먼저 예측해 본다. 이 부분에 백의 팻감이 3개 정도 있지만 흑의 팻감으로 B∼E 등이 있고 또 상변에도 팻감을 쓸 수 있으니 백이 패를 이기려면 어디선가 팻감에 불응하는 수순을 찾아야 한다. 그 수순을 찾는 일이 보기보다 간단치 않다. 만일 백이 패를 이길 수 없다면 A로 찌르는 팻감은 보류해야 한다. 자신의 공배를 메우는 악수일 뿐만 아니라 다음에 끊는 팻감 등이 모두 손해수. 어차피 팻감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백은 A를 두지 않고 다른 수를 시도하게 된다.
이처럼 패가 벌어지면 팻감의 수와 진행 등을 수읽기하는 데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기사의 두뇌는 다른 어떤 때보다도 복잡하게 돌아간다. 이런 수읽기를 하다가 팻감을 쓸 차례인지를 잊어버리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옛날 일본 명인전 도전시합에서 조치훈 9단은 기록사에게 자신이 패를 따낼 차례인지를 묻고 두었다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기록사가 무심결에 "네" 하고 대답을 해서 조 9단은 패를 따냈는데 사실은 팻감을 써야 할 차례였다.
이 묘한 반칙을 놓고 입회인이 결정하기 어려워 심판위원회를 열었는데 판정결과는 무승부. 반칙을 했지만 기록사에게 물어보고 두었다는 이유로 재대국을 선언했다.
당시 한국팬들은 그 판정에 불만을 터트렸지만 실은 관대한 판정이었다. 이후 조치훈 9단이 승리하여 명인 타이틀을 쟁취하고 금의환향하는 감격을 누렸는데 만일 냉정하게 반칙패를 선언했다면 충격으로 조치훈 명인의 탄생은 어려웠을지 모른다.
아마추어들은 다행스럽게도 프로들이 겪는 이런 패싸움 반칙을 당하지 않아 좋다. 그러나 이는 패싸움을 너무 단순하게 처리하기 때문이므로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패를 하기 전에 팻감을 세어보는 정도는 해 보도록 하자.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9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