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바둑팬들은 바둑최강국인 한국이 태권도 사범처럼 해외에 바둑을 널리 보급해 주기를 기대한다. 최근에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바둑팬이 많아지고 한국에서 바둑을 공부하는 외국인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 바둑계에서는 이러한 열망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 바둑행사에 프로기사를 한두 명 보내는 정도이며 이것도 예산 문제로 그다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해외 바둑 보급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생적으로 해외 바둑 보급에 앞장서서 활동하는 그룹이 있다. 바로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들. 상당수의 학생들이 방학이 되면 유럽으로 바둑지도를 나간다. 대부분 바둑팬의 집에서 숙식을 하며 서양팬들을 지도하고 바둑행사에 참가한다.
올 여름에도 바둑학과 겸임교수인 이기봉 아마6단을 비롯하여 10여 명의 학생들이 해외보급 투어를 나갔다. 유럽의 연례행사인 전유럽 바둑대회에는 프로기사인 김민희 3단 등 여류기사들도 참가를 했다.
장기간 유럽에서 바둑 지도를 하는 학생도 있다. 최근에 독일에서 돌아온 황인성 아마6단은 베를린에서 1년간 머물며 바둑 보급을 했다. 그동안 바둑을 지도하며 번 돈을 모아 한국 고유의 순장바둑대회를 열어 서양팬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여류국수 타이틀 보유자였던 프로기사 윤영선 4단은 바둑학과 대학원을 다니던 중 유럽으로 해외보급에 나섰다. 태권도 사범처럼 아예 독일에서 본격적인 바둑지도를 해 보려고 결심한 것.
바둑학과 학생의 해외바둑 열풍은 지난 2001년 러시아에서 유럽바둑대회와 함께 국제바둑학 학술대회를 열면서 시작되었다. 바둑학과에서 격년으로 개최하는 이 행사에 학자와 학생 그리고 바둑팬 등이 대거 참가하면서 한국바둑을 서구에 각인시켰고 그 후로 해외진출의 러시가 이어지게 되었다.
바둑학과 학생들이 이처럼 해외로 나가는 데는 몇 가지 동기가 있다. 외국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자신이 좋아하는 바둑을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데서 오는 보람 등이 주요 동기. 다른 대학생들은 비싼 수강료를 내며 어학연수를 하는데 이들은 외국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용돈을 벌고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익히게 된다는 점도 매력이다.
이러한 해외 원정 바둑 보급 러시에 힘입어 한국바둑이 서양팬들에게 점점 널리 알려지고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바둑은 최강의 위치에 있음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수년 전 한국에서 열린 세계여류대회에 참가한 네덜란드 소녀가 "한국도 바둑 두는 나라였나요?"라는 질문을 던진 해프닝도 있다.
이제는 해외의 바둑팬치고 한국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해외바둑 원정대로부터 강의를 듣거나 지도를 받은 팬들 중에는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기회가 되면 바둑의 나라 한국을 방문하여 새로운 체험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크리스토프, 독일의 옌스 군과 같이 바둑학과에 유학을 온 학생도 있다.
해외보급 러시와 함께 서양인이 운영하는 바둑사이트에 행마(Haengma) 포석(Posuk) 등 우리의 바둑용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일본이 바둑을 자신들의 문화로 소개했던 과거에 비해 많은 변화가 생긴 셈이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해외 보급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러한 학생들의 해외 보급에 바둑계나 정부의 지원이 약간만 더해진다면 국가적 이미지를 증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