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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도 |
바둑에는 기술에 관한 격언들이 많이 있다. '끊으면 뻗어라' '악수는 악수를 부른다'와 같은 격언들이 100개 정도 있다. '부득탐승' 즉 '승리를 탐하면 진다'와 같이 한자성어로 된 격언도 있다.
짤막한 격언으로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바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비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론을 장황하게 설명하면 기억이 잘 안 되므로 격언 형식으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인지적 측면에서 상당히 유용하다.
바둑격언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행마법이다. '날일자는 건너붙여라'와 같이 바둑돌을 운신하는 법에 관한 격언이 20개가량 있다. 포석과 전투의 비결을 다룬 격언도 상당히 많다.
이에 비하여 정석에 관한 격언은 거의 없다. '정석은 외운 다음 잊어버려라'가 거의 유일한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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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도 |
이 격언이 좀 묘하다. 기법을 다룬 것이 아니라 학습에 관한 태도를 말하고 있는데, 애써 외운 것을 잊어버리라고 하니 이율배반적인 가르침 같기도 하다. 학교공부나 기업연수 등에서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것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 격언은 상당히 의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떤 지식을 암기했다고 해서 만능인 것처럼 여기며 아무 때나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도) 바둑팬 중에는 백1과 같이 화점에 걸쳐가면 노타임으로 흑2에 붙이는 사람이 있다. 흑8까지의 정석을 두어놓고 흡족해 하는데 실은 엉터리 선택. 백9까지 우변에 진을 치도록 하여 흑이 불리한 결과다.
(2도) 이 상황에서는 흑2로 협공하여 백11로 되는 정석을 택하는 것이 좋다. 이 정석과 우하귀 굳힘이 이상적으로 호응하는 구도이기 때문.
앞의 붙임수정석을 맹목적으로 외운 사람은 이처럼 다른 선택을 못할 가능성이 있다. 차라리 정석을 몰랐다면 주변의 배치를 고려하여 2도와 비슷한 길을 골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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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도 |
(3도) 중급자의 경우 정석을 무조건 외우려 하기보다는 수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프로들이 자주 두는 우상귀의 정석에서 이 모양을 힘들여 외우는 것보다 백8의 의미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래쪽처럼 백2로 몰아 뚫는 수가 있음에도 왜 그 수를 두지 않는 것일까. 흑9로 ◎에 이을 때 백10까지 잡아 백이 실리가 커 보이나 흑의 세력이 너무 막강하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실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외운 정석을 잊어버리라는 말은 경제나 국가경영에도 통용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 성공한 모델(정석)이 한국에 반드시 맞는다는 보장이 없다. 다른 분야에서도 정석 격언에 담긴 의미를 되새긴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