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어느 낯선 여인의 향기가 실내 공기를 바꾼다. 오랜 원목에서 묻어나는 에스프레소의 은은한 커피 향은 추위에 언 몸을 녹여주고, 선향의 기운이 퍼진 법당은 고뇌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어느새 해탈의 문 앞에 서게 한다.
이처럼 공간을 인지하고 기억하는데 중요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거의 모든 일상생활과 연결돼 있는 향(香)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알면 인류 삶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향수(송인갑 지음·한길사 펴냄·2만8000원)는 향수의 기원에서부터 역사 문화 제조법 조향사 향수박물관 등에 대한 다채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일종의 ‘향수 백과사전’이다.
저자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향짱’으로 통하는 국내 최고의 향 전문가로 2000년에 휴대전화 디지털 발향장치와 엘리베이터 향 공조장치로 특허를 내기도 했다.
향은 고대때부터 종교의식이나 미용 혹은 심신의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다.
기록상 처음으로 향을 사용한 민족은 이집트인들이다. 이들은 종교행사는 물론 시체를 보존하는데도 방부제로 향료를 썼다.
성서에도 기분을 좋게 하는 유향이나 올리바눔, 몰약 같은 다양한 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언자 마호메트가 달콤한 꽃 추출물인 ‘헤나’를 칭송한 것을 비롯해 호메로스, 두보, 셰익스피어, 보들레르 등 여러 문인들이 작품을 통해 권력과 영광을 노래하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은 매개물이 바로 향이었다.
책은 이어 프랑스 향수산업의 요람인 그라스와 오늘날 세계 향수시장을 움직이고 있는 파리를 중심으로 룩소르, 그리스와 로마, 베네치아 등 향의 역사를 만든 도시들을 찾아간다.
 |
| 저자는 향의 역사는 인류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향의 원료가 되는 나무와
꽃, 열매가 가득한 곳으로 그려진 에덴동산(작은 사진)과 목욕후 향내가 담긴 유지를 몸에 바른 로마시대 여인
들의 목욕문화를 그린 로렌스 알마타데마의 카라칼라욕탕 |
중국의 시안과 일본의 나라, 서울 등 동양의 향문화 중심지도 비중 있게 다룬다. 중국에서는 향을 놀랄 만큼 다양하게 사용했으며 그 규모 또한 엄청났다고 한다. 저자는 중국에서 향문화가 꽃을 피운 곳은 당나라 때의 장안이며 당시 양귀비가 목욕을 했다는 화청지엔 향목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져온다고 전한다.
일본인들은 향을 놀이문화로까지 발전시켜 ‘향도(香道)’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한국의 향 생활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조선 선비들은 독서할 때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향로에 향을 지폈으며 부부 침실엔 사향을 사르고 난향 촛불을 밝혔다.
궁중의 상궁들은 줄향을 치마 속에 뒀으며 대부분의 관리들과 선비들도 의무적으로 향낭을 찼을 정도로 향은 필수품이었다.
또한 선비들 사이에선 향수에 머리를 감고 목욕까지 하는 훈목(薰沐) 관습이 생활화돼 있었으며 혼례에서도 향은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었다.
조향사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타고난 감각으로 향수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로 ‘샤넬 넘버5’를 만든 러시아 출신 에르네스트 보 등을 비롯해 향 산업을 일군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국내에는 조향사는커녕 향 전문가조차 없는 현실에서 향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자 책을 만들게 됐다”는 저자는 “향박물관과 향수학교를 세워 향 전문가를 양성함으로써 다가올 ‘향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책 말미에서 주장하고 있다.
/ 박재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