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고구려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일반인들이 고구려인의 삶과 문화를 접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고분벽화라는 ‘창’보다 좋은 게 없다. 문제는 수없이 보아온 벽화지만 그 속에 담긴 인물이 누구인지, 도상(圖像)은 무엇을 나타내는지 등 전문가가 아니면 풀지 못할 수수께끼가 너무 많다는 점일 것이다.
고구려 벽화 전문 연구가인 울산대 전호태 역사문화학부 교수가 펴낸 벽화여, 고구려를 말하라(사계절·14800원)는 벽화를 통해 고구려를 들여다 보는 단서를 제공해주는 책이다.
전 교수는 고구려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었으며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주는 실마리들이 벽화 속에 있다고 말한다.
중국 지린성 지안시 퉁거우(通溝)고분군에 있는 무용총(춤무덤)의 벽화 ‘사냥도’는 사냥터 특유의 쫓고 쫓기는 급박한 장면과 함께 고구려인의 호방한 기상을 잘 보여준다. 활시위를 당기는 사냥자나 활을 피해 달아나는 짐승들의 자세와 표정이 사진을 보는 듯 생생해 고구려인의 용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숨막히는 기마전 끝에 적장을 참수하는 퉁거우 12호분의 벽화. 전장에서 적장의 목을 베는 장수를 그린 이 벽화를 보면서 전 교수는 매복에 걸려 포위된 백제 성왕에게 정중히 목을 내놓으라고 했던 신라 지방 군관의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교예(서커스) 공연이 그려진 수산리 벽화에 대한 설명은 비교문화적 관찰력이 돋보인다. 이 벽화에 담긴 교예 장면은 오늘날 서커스의 곡예를 연상시키는데 저자는 고구려 교예를 고대 중국의 잡기(雜技), 환술(幻術) 등과 비교하면서 아시아 서쪽인 페르시아에서 전래됐다고 주장한다.
 |
| 저자는 벽화를 통해 고구려인의 생생한 삶과 문화를 추적하고 있다. 사진은 기마전 끝에 적장을 참수하는 모습을 그린 퉁거우 12호분 벽화(위)와 250여명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안악3호분의 대행렬도. |
또 평양 수산리 벽화 속의 인물 의상과 일본 다카마쓰 고분벽화 옷차림과의 유사성에 주목, 당시 동아시아 물적 교류의 단서를 찾아내기도 한다. 외부의 적을 향해 눈을 부라려야 할 사신(四神)들이 스스로를 응시하고 있는 ‘사신도’를 통해서는 외침에 맞서 승리를 거두고도 내부 정치투쟁에 시달려야 했던 고구려의 비극적 정치사를 읽어낸다.
이밖에도 25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안악3호분의 대행렬도 등 당시 고구려인의 풍습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여러 벽화를 소개하면서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풍성하게 풀어내고 있다.
생생한 컬러 화보로 구성된 고구려 벽화를 지켜보며 이렇듯 종횡으로 치닫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고구려인들이 성큼성큼 벽화 밖으로 걸어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처럼 책은 벽화 한 장면을 주제로 발굴이야기, 학계 논쟁, 대외교류, 신화, 과학기술 등 고구려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어 술술 읽힌다.
저자는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논쟁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다만 논쟁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각자의 입장은 어떠한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고구려가 누구의 역사인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않으면서도 벽화를 통해 고구려의 역사가 어떠했는지를 밝힘으로써 역사의 귀속권을 둘러싼 논쟁을 잠재울 수 있는 중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 박재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