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부터 호적을 작성해 지방과 백성들을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인덱스(색인)용’ 목간(木簡·사진)이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무더기 발굴돼 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목간은 일본보다 100년가량 앞서는 것으로, 신라가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이른 시기부터 중앙 국가권력이 지방 곳곳에 깊숙이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유물로 평가됐다.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선태)는 “최근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목간 112점에 대해 적외선 사진촬영을 실시한 결과 93점에서 묵글씨 400여자를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연구소는 목간학자와 금석학자 등 관계전문가들의 두차례에 걸친 판독회의를 거쳐 이 목간에 적힌 묵글씨에서 확인되는 신라의 벼슬이름이나 지명 표기 등을 볼 때 6세기 중반 진흥왕(540~578년)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결론냈다.
현재까지 일본과 중국은 목간이 수십만점씩 출토됐지만 국내에서는 1970년대 경주 안압지에서 50여점이 출토됐고 함안 성산산성에서는 94년 27점이 나온데 이어 최근 93점이 발견됐을 뿐이어서 학계에서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목간은 나무막대기에 지명 인명 관등명 곡물명 신분명 등을 붓으로 쓰거나 칼로 새겨넣은 것이다. 이번 목간 중 상당수는 두루마리 문서에 꽂는 것으로 오늘날 호적을 정리할 때 이용되는 ‘인덱스’와 같은 용도로 쓰였다.
목간에 쓰인 지명은 급벌성(及伐城) 감문성(甘文城) 등 20개 가량이었다. 인명은 파루(波婁) 거리지(居利支) 등 23명이 확인됐고 이 중 지(智·知·只·支)로 끝나는 인명이 19개나 차지, 신라인명의 특징을 잘 드러냈다.
/ 박재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