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70에 남은 희망이라고는 조선 독립밖에 없소. 내가 절용절급(節用節給)해 평생 소원성취하는 것을 (앞으로) 보게 됐으니, 제일 기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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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창원대학교가 대학본부에 내건 대형 현수막. 국립창원대 제공 |
1942년 3월 18일 하와이에서 발행된 신문 ‘국민보’에는 이만정(1870~1949) 선생이 고국에 70여 원을 보내고 독립운동자금 기부를 독려하면서 이같이 언급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14일 국립창원대에 따르면 1905년 미국 하와이에 정착한 한인 이민 1세대인 이만정 선생은 해방 때까지 빅아일랜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번 돈을 독립군에게 전달했다. 창원대는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하와이에서 이 선생처럼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65인의 서훈을 국가보훈부에 처음 신청했다.
이들은 국립창원대 박물관이 2019년부터 자체적으로 진행해 온 ‘하와이 한인 이민자 연구’ 과정에서 발견됐다. 2018년 특강을 위해 창원대를 찾은 하와이대 세리 루앙피닛 교수가 “일본 등 다른 국가 이민자와 달리 한인 무덤이 방치되고 있어 묘비 문구 등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요청한 게 계기가 됐다. 1902년부터 3년간 한인 노동자 7400여 명이 하와이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주로 남성이었던 탓에 1910~1920년대 여성 800~1000명이 추가로 바다를 건넜다.
연구진은 현지에서 이들의 묘비 문구 등을 분석했고, 이들 중 상당수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포착, 수년간 발굴 작업에 집중했다. 그 결과 다른 기록과 교차 검증 작업을 통해 대한인국민회 대한부인구제회 등에서 활동하거나, 독립운동 자금 지원 등 공적이 명확하게 드러난 이들을 추서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번 신청 명단에 오른 윤계상(1867~1922) 선생은 하와이 한인여학교·한인기독학원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민족교육과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교육 활동을 벌였다. 하와이 결사단체 포와하나연합회 총무,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부회장·중앙총회 하와이특명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국민의무금·인구세 등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한 유영로(1868~1947) 선생, 대한부인구제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혈성금 등을 건넨 손점상(1899~1983) 선생 등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