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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어머니는 갈 곳이 없다 /서진

방황하는 어른들 빈 시간 채워 줄 사회적 관심과 작은 공간이라도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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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10-15 20:47:51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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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들어 어머니에게 전화가 자주 온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통, 맛있는 걸 해놨으니 건너와라는 전화가 다인데 요즘에는 레퍼토리가 좀 달라졌다. 얼마 전에는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집으로 가는 중인데(눈물을 쏙 뺄 만큼 아팠다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심심해서 전화를 걸어봤단다. 아, 그러세요? 전화를 끊고 나니 좀 찜찜했다. 어머니가 아무 이유 없이 전화를 할 리가 없다. 다시 전화를 걸어 어디 계시는가 물어보니 백화점 한 쪽에 마련된 소파에서 쉬고 있단다. 그럼 그리로 갈까요? 어머니는 거절을 안 하신다. 아내는 우리집 가족이 쿨하다고 한다. 가족들끼리 무덤덤한 건 다들 똑같은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지만 돌이켜 보니 함께 가족 여행을 하거나 다함께 외식을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무뚝뚝한 부산남자고 나도 그 피를 물려받았나 보다. 다행히 누님이 부모님을 모시고 같이 살고 있어서 부모님이 그리 적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퇴직 후에도 다른 일을 하시고, 누나도 직장에 나가고, 조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라 낮에는 시간이 텅텅 비는가 보다. 다행히 다 큰 아들의 직업은 백수에 가까운 소설가라 어머니가 어디에 있든 달려갈 준비는 되어 있다.

어머니가 말한 백화점의 여성복 매장에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쪽에 정말로 편안한 쇼파와 테이블,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었다. 어머니뿐 아니라 몇몇 어르신들이 티브이를 보면서 쉬고 있었다. 뭐하셨어요 여기서? 그냥, 심심해서 사람 구경. 옷이라도 사드릴까요?(물론 말 뿐이다) 아서라, 얼마나 비싼데. 어머니와 나는 백화점 한 바퀴를 돌고 푸드 코트에 내려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대낮에도 백화점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어머니는 평소에 살 것도 없는데 백화점에 와서 시간을 보낸 적이 가끔 있다고 했다. 백화점에 있는 어머니 또래의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리라.

어머니에게 몇 가지를 제안해 보았다. 백화점이나 동네 마트 혹은 구청에서 하는 문화센터 강좌, 방송국에서 하는 주부 노래교실, 혹은 체육센터에서 하는 운동 강좌. 하지만 같이 갈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마다하신다. 마침 아는 후배가 연극초대를 해서 어머니와 함께 보러 갔다. 어머니는 평생 연극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옥탑방 고양이'라는 연극이었는데 좌석은 좁고 공연 시간은 약간 길었지만 함께 웃고 즐기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끝날 때 즈음엔 나는 약간 졸았다. 옆자리에 어머니를 보니 역시나 졸고 계셨다. 그때 문득 어머니가 무척 나이가 들어 보이기도 하고, 초등학생처럼 어려 보이기도 했다. 어머니에겐 언제나 어리광을 피워도 될 것 같았는데, 이제는 내가 돌봐줘야 할 것 같은 복잡한 심경이 들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여가시간에 대해서 부모들은 고민한다. 주말에, 방과 후에 무엇을 하면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즐거움이 될지 정보를 찾아본다. 하지만 부모님에 대해서는 과연 그만큼 노력을 하는지는 의문이다. 자식들의 도움이 없어도 척척 여가를 잘 활용하시는 세련된 부모님도 있겠지만, 시골에서 도시로 이동해서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아온 부모님들은 노후에 부쩍 늘어난 시간을 감당하기 힘든 것 같다. 요즘에는 지하철 벤치에, 공원에, 백화점에 어른들이 아무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것이 예사처럼 보이지 않는다. 자식들은 일 때문에, 자신들의 자식들 때문에 정신이 없을 때 우리의 부모님들은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자식들이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여행을 함께 가더라도 빈 시간은 채워지지 않는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사회가 관심을 가져줘야 하는 것인데도 우리는 애써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걸 만들 필요는 없다. 어른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좀 더 편의 시설을 확충했으면 좋겠다. 지하철 역에 갤러리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벤치에서 방황하는 어른들을 위해 티브이를 볼 수 있고, 문화강좌를 여는 작은 휴식 시설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용두산 공원에 장기와 바둑 벤치를 만들어서 어른들이 좀 더 편하게 놀 수 있도록 만드는 건 어떨까? 도시 곳곳에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더 이상 방황하지 않도록 조그만 공간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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