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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표준화석과 열쇠층 /이상원

두께 1m도 안되는 포장된 도로만큼 현재를 보여주는 표본 없을 듯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9-13 20:46:1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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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시대에 살았던 어떤 생물종이나 생성된 특정 지층은 지사(地史)를 엮는 데 매우 유용하다. 지질시대에 따라 생물종들이 달라졌다는 것은 역으로 화석으로 변해버린 고생물을 통해 과거 지질시대나 당시의 지구 환경을 해석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깨우쳐 준다. 많은 화석종 중에서 특히 과거 지질시대를 결정하는 데 이용되는 화석을 표준화석이라고 한다. 한편 고생물종은 당시에 서식했던 환경을 알려주는 지시자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이를 시상화석이라고 하며 생태 환경, 즉 서식 장소, 해수의 온도, 수심 같은 요소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지질시대의 어느 시기에 광역적으로 퇴적된 지층 중에서 화산재가 넓은 지역에 걸쳐 퇴적되어 생성된 응회암이나, 일반적인 퇴적층과 달리 특징적인 색이나 구성 물질을 가진 지층은 멀리 격리되어 분포하는 지층을 상호 비교할 때 유용한 기준층이 되므로 이를 열쇠층(key bed) 또는 건층(鍵層)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폭발적인 화산분화로 다량의 화산재가 분출해 상당히 넓은 지역을 덮어버리는 경우, 이 화산재가 고체화하여 생성된 응회암층은 훌륭한 열쇠층 역할을 할 수 있다. 10세기에 대폭발을 일으킨 백두산의 유리질 화산재는 동해를 건너 멀리 일본의 홋카이도까지 이동 퇴적되어 얇은 백색의 테프라(미고결 화산쇄설물의 총칭)로 쌓여 멀리 떨어져 몇 군데에 분포하는 광역 테프라를 대비하는 데 큰 가치를 가지고, 이 백색 화산재층 하부에서 발굴되는 유적지의 시대를 결정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구 상에 존재했다가 소멸된 생물종은 많았지만 모두 화석종으로 보존된 것은 아니며, 설사 보존되어 화석으로 발견되어도 모두 시대를 결정짓는 데 활용되는 건 아니다. 표준화석이 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화석으로 오래 보존될 수 있는 골격(또는 경질부)을 갖추어야 한다. 연질부는 매몰되면 쉽게 분해되어 지층 속에 화석으로 남아 있기 어렵다. 둘째, 지구 도처에 많은 개체가 서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단지 부산 앞바다에 한정해 아무리 많이 서식하고 또 단단한 골격을 가졌더라도 지구 전체에 걸쳐 시대를 결정짓기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전 지구적 분포를 하더라도 개체가 적으면 화석으로 보존될 확률이 낮아진다. 셋째, 생존 기간이 짧아야 한다. 생존 기간이 짧을수록 보다 정확한 시대를 결정지을 수 있다. 생물종이 수천만 년 또는 수억 년에 걸쳐 생존할 경우 보다 세분된 지질시대를 결정하는 데 쓸모가 없다. 한마디로 말해 떼거지로 굵고 짧게 살아야 표준화석으로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생물종이 생성 소멸되었지만 표준화석으로 이름을 올린 생물종은 극히 제한적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종류의 지층 중에서 열쇠층이 되기 위해서 갖춰야 될 조건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아주 넓은 지역에 걸쳐 층이 분포해야 한다. 좁은 지역에 국부적으로 분포해선 광역적인 대비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 다음으로 다른 지층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을 가져야 한다. 그러자면 일반적인 지층과는 달리 희소성을 가지거나 색이나 구성 물질에 있어 확연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가능한 빨리 매몰되어야 한다. 최소한 이 세 가지를 만족시킬 경우 지층을 대비할 때 기준이 될 수 있는 열쇠층, 건층이 될 수 있다.

지구가 존재하는 한 지질시대는 계속되고, 미래에 언젠가는 우리 인류도 다른 생물들의 진화 과정처럼 변화하거나 소멸될 것이다. 인류 출현은 다른 생물종에 비하면 지극히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게다가 인간은 적도지방에서 극지방까지 또 열대우림과 사막, 높은 산악지역 등 전 지구에 걸쳐 집단적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사람이 사는 곳엔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닦은 도로가 끊없이 연결되어 지구를 덮고 있다. 짐작건대 아마도 훗날 우리 인간과 불과 두께가 1m도 되지 않는 얇은 아스팔트와 시멘트 포장도로보다 현재(역사시대)를 지시하는 훌륭한 표준화석과 열쇠층이 없지 싶다. 부산대 교수

※사외 필자의 견해는 본지의 제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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