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기관 개혁과 견제’는 끊임없이 논쟁의 중심에 오르는 주제다. 검찰과 경찰, 법원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권한을 어떻게 나누고 통제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은 첨예하게 갈린다. 때로는 제도의 실효성을 따지기보다 어느 진영이 주도권을 잡느냐는 정치적 대립이 앞서기도 한다. 권력을 가진 자가 그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중세 고려의 정치 현장에서도 중요한 과제였다.
고려에 현대적 의미의 삼권분립이 존재했던 건 아니다. 그런데도 고려에는 국왕과 관료의 정치 행위를 비판하고, 부당한 결정을 바로잡으며, 공직자의 비위를 규찰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었다. 그 중심에 대간(臺諫)이 있었다.
대간은 관료를 감찰하고 탄핵하는 어사대의 대관(臺官)과 국왕에게 간언하는 중서문하성 낭사의 간관(諫官)을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성종 대에는 당·송의 제도를 참고해 감찰기구를 정비하고 간관의 기능을 확대했다. 문종 대에는 대간 직제와 정원을 정비했다. 대간은 국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간쟁(諫諍), 부당한 명령을 되돌리도록 요구하는 봉박(封駁), 관리 임명에 대한 심사인 서경(署經), 관료의 비위를 살피는 규찰과 탄핵을 맡았다. 이는 국왕이 국정 운영의 중심이라는 원칙을 인정하면서도 권한의 행사가 늘 정당한 것은 아니라는 문제의식을 제도 안에 담은 것이다.
성종 원년(982) 5품 이상 관리에게 국정의 잘잘못에 관한 의견을 올리도록 했다. 최승로는 이에 응해 시무 28조를 올려 국가 운영의 방향을 제시했다. 선대 국왕들의 정치를 평가하면서 지나친 불교 행사와 국가 재정 낭비를 비판했다. 지방관을 파견해 지방 세력의 횡포로부터 백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건의도 했다. 통치자의 업적을 무조건 지지하는 대신에, 국왕의 정치도 평가와 비판의 대상이었다. 성종은 최승로가 제기한 건의 상당 부분을 받아들였다.
관리 임명에 대간의 심사를 거치도록 한 서경 제도 역시 인사권을 둘러싼 중요한 견제 장치였다. 고려에서는 원칙적으로 1품부터 9품까지 관리의 임명에 서경이 적용됐다. 국왕이 임명을 재가했더라도 대간이 심사한 뒤 서명하지 않으면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다. 심사 과정에서는 임명 대상자의 재능과 행실, 결격 사유를 꼼꼼히 살폈다. 인사청문회나 국회 임명·동의 절차 같은 제도는 아니나, 인사권자의 결정만으로 임명이 완결되지 않도록 별도의 심사 관문을 둔 것이다.
공직을 사익의 수단으로 삼거나 직무상 권한을 부당하게 행사하는 행위는 탄핵 대상이었다. 덕종 원년(1031)에 어사대가 왕희걸 유백인 최복규 이응년의 관직을 박탈했다. 이들이 서경(평양)에 파견되던 중 토지를 구하고 재산을 늘렸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예종 7년(1112) 간관들이 국고 낭비를 이유로 천수사 증축 중지를 상소했다. 국왕은 간관의 건의에 천수사 공사를 즉각 중단했다. 왕권에 반하는 세력의 견해도 적극 수렴하여 정책적으로 포용하는 국왕의 유연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고려의 제도에서 비판과 견제의 통로는 대간 같은 공적 장치만이 아니었다. 시의(時議)와 세평(世評), 곧 당대의 정치적 논의와 사회적 평판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시의는 특정 정책이나 인물에 대한 당시의 공적 논의이다. 세평은 인물의 행실과 도덕성, 정치적 처신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뜻한다. ‘고려사’ ‘고려사절요’에는 당시 사람들이 이를 비웃었다(시인기지·時人譏之)거나, 세상의 논의가 이를 비판했다(물의비지·物議非之)는 표현이 등장한다. 시의·세평에 따르면 청렴하고 강직하며 백성을 배려하는 관리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탐욕과 사치, 직무 태만은 비판거리였다. 공식적인 정치 공간에 접근하기 어려운 백성도 불만과 비판을 소문 익명서 벽서 참언과 같은 방식으로 드러냈다. 비공식 여론은 권력의 부당함을 드러내는 수단이지만, 자칫 근거 없는 뜬소문과 정치적 선동의 부정적 통로일 수 있었다.
결국 견제기관을 설치하는 것만으로 권력의 남용을 막긴 어려웠다. 제도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과 비판을 받아들이는 정치문화가 함께 뒷받침돼야 했다.
이제 되돌려 지금의 권력 견제와 개혁을 짚어본다면 검찰 권한 조정, 공수처 운운 모두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막기 위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권력기관 견제와 개혁의 핵심은 어느 기관의 권한을 더 키울 것인가에만 있지 않다.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 누구든 행위가 공적인 평가와 감시를 피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있겠다.
권력은 인간의 선의를 믿고 맡겨둘 대상이 아닌, 언제든 남용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통제 장치를 두어야 할 대상이다. 독주 제어만큼 중요한 건 권력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멈춰 세우는 일이다. 대간·시의·세평의 공식·비공식 여론 창구에서, 반대 의견도 수용하려 했던 고려의 권력·견제·소통의 문제를 재음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