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오르는데 지갑 사정은 뻔하다 보니 투자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하반기 들어 국내증시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상당수 개인투자자가 손실 구간에 있다고 한다. 외국인의 매도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개인투자자들마저 본전만 회복하면 주식을 팔고 떠나겠다는 분위기여서 국내 증시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지난 16일 미국 증시가 폭락하자 19일 국내 증시를 걱정하며 공포에 휩싸인 투자자가 많았다. 코스피가 6000선을 회복하지 못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에 연동되는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와 국민연금을 향한 투자자들의 원망도 커지고 있다. 상승세를 보이던 국내 증시에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출시되면서 관련 종목으로 자금이 쏠렸고, 하락장에서는 해당 상품의 손실 확대와 매매 움직임이 시장 변동성을 키웠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투자자 손실과 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 등을 들어 국내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우려에도 금융위원회는 올해 1월 관련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4월 규정을 개정했다. 이어 5월 27일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품 16종이 상장됐다. 이 상품은 기초 주식의 하루 수익률을 두 배 수준으로 추종하기 때문에 주가가 하락하면 손실이 커질 수 있다.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의 관련 레버리지·인버스 ETP(ETF·ETN) 확정 매매 손실은 8월 14일 기준 2조 3242억 원에 달했다. 금융당국은 7월 신규 상장을 중단하고 기본예탁금을 높이는 등 규제를 강화했다.
위험한 금융상품임을 알면서 투자한 개인투자자에게도 투자 판단에 따른 책임이 있다. 그러나 투자자 보호와 시장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품의 위험성을 사전에 경고한 보고서를 받고도 금융당국이 도입을 서둘렀다면 그 판단의 적절성을 따져 봐야 한다. 19일 열린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는 레버리지 ETF 도입의 책임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제기됐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상장 일정을 맞추기 위해 심사를 빨리 진행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상품 도입의 핵심 인물을 밝혀 달라는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의 주문에 이 원장은 “정부와 당국 협의로 결정된 사안이었지 특정인이 (핵심 역할을) 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개인투자자들이 2조 원이 넘는 확정 매매 손실을 입었는데도 상품 도입 과정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것은 시장의 신뢰를 훼손하는 일이다. 정부가 시장 활성화라는 명분 아래 위험을 충분히 평가하지 않은 채 도입을 서둘렀다면 그 판단의 근거와 책임을 밝혀야 한다. 도입 결정 경위와 책임 소재를 확인할 회의록이 없다는 정부 설명도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에 대한 의문을 키운다.
증시가 하락할 때 시장의 완충 역할이 기대되는 국민연금의 리밸런싱 유예도 논란의 대상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코스피가 급등하자 기금운용위원회는 올해 1월 리밸런싱을 유예했고, 5월에는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14.4%에서 28.8%로 높였다. 당시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기금 운용 원칙과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후 국내 증시가 하락하면서 국민연금은 올해 3분기 국내 주식시장에서 182조 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평가손실을 냈다. 분기 기준 수익률도 7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코스피지수가 8800선까지 급등했을 때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 자금이다. 운용 원칙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용돼야 한다. 투자 원칙을 변경한 근거와 예상 위험, 대응 방안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또한 정치적 영향이나 외부의 압력에 운용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국민연금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려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관료들이 위원회에 대거 참여하는 현행 지배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 연금 측이 시장 안정을 이유로 관련 회의록 공개를 2030년으로 미룬 것 역시 국민의 알 권리와 기금 운용의 투명성 측면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정책이 언제나 의도한 효과만 내는 것은 아니다.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 경우도 많다. 정책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사전 검토가 충분했는지, 위험을 제대로 평가했는지, 부작용에 적절히 대응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잘못된 판단이 확인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묻고 제도를 개선하면 된다. 이러한 과정 없이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은정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