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상이 칼럼]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 이상이 제주대 의과대학 교수
  •  |   입력 : 2026-10-15 18:40:46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복지에서 ‘필요’는 개인의 단순한 욕구가 아니라 사회의 공동 노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욕구’다. 따라서 국가는 국민의 복지 필요를 제도적으로 충족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복지의 ‘필요 원칙’이란 국민의 실질적인 필요를 기준으로 복지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복지 재정을 한층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의료와 고용, 주거와 돌봄, 기초생활과 노후소득 등 재정이 지출되는 모든 복지 분야에서 ‘필요 원칙’을 확립하고 준수해야 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개혁 역시 끊임없이 밀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 원칙을 저버린 채 ‘포퓰리즘’에 빠져든 사례가 적지 않다. 이 칼럼에서는 지면의 제한으로 인해 복지의 두 분야에서만 그 실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의료 분야의 핵심 정책인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의 실태를 짚어본다. 법에 명시된 건강보험 제도의 본질은 국민의 생명 및 건강과 밀접한 질병·부상의 치료에 급여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제도의 목적과 급여의 범위를 법률로 정한 것은 건강보험 재정의 제약 때문인데, 이는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우리 사회의 중대한 과제다. 올해 2조8000억 원에 달하는 재정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다가올 인구 위기는 건강보험 재정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 전망이다.

건강보험의 ‘필요 원칙’이란 제도의 취지에 맞는 법정 의료서비스를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누리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재정 지출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통제하는 동시에, 건강보험의 보장률(전체 진료비 중 건보 부담 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4.9%로, 주요 선진국의 85% 수준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다만,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한 보장률 확대에는 건강보험료 인상 등 국민 부담의 증가가 필연적으로 따르게 된다.

한편, 정치적 이득을 노린 건강보험의 ‘포퓰리즘’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제도의 본질에 어긋나는 급여 확대다. 이른바 ‘신체의 완전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탈모 치료 등 미용·성형 영역까지 건강보험 적용을 공약하는 식이 그것이다. 둘째는 보장률 확대의 열쇠인 건강보험료 인상 추진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것이다. 이는 ‘필요 원칙’의 준수는커녕 재정 적자의 누적을 초래해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파괴하는 행위다. 게다가 이는 건강보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세 재정과 국정의 전 분야에서 나타날 수 있는 망국적 병증이다.

다음으로 노후소득 분야의 핵심 축인 기초연금을 짚어보자. 현재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인 약 780만 명에게 지급되고 있다. 이 제도 역시 국민건강보험처럼 제도의 본질에 충실하도록 정책을 설계하고, 시대 변화에 맞춰 중단 없는 개혁을 추진해야 마땅하다. 기초연금은 2014년 7월 도입 당시 월 최대 20만 원으로 시작해 2018년 25만 원, 2021년 30만 원으로 인상되었으며, 물가 상승분이 더해져 2026년 현재 월 34만9700원에 이르렀다.

기초연금의 ‘필요 원칙’이란 노후소득 지원이 절실한 노인에게 적정 수준의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당연히 소득 하위 계층에 지원을 더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거대한 예산 제약과 재정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올해 기초연금 지출액은 23조1378억 원인데, 2030년이면 30조 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결국 기초연금의 ‘필요 원칙’을 지켜내려면 결단이 필요하다.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50%로 축소하고 추가 재원을 확보해서 이를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구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기초연금의 ‘포퓰리즘’ 역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제도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무차별주의다. 과거 정치권을 맴돌았던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주자”는 ‘노인기본소득’ 주장이 대표적 사례다. 둘째는 ‘필요 원칙’에 기반을 둔 기초연금 개혁을 아예 외면하고 방치하는 행태다. 수급 대상을 소득 하위 50%로 좁히고 급여액을 늘리는 시급한 개혁을 정치적 지지 이탈이 두려워 미루는 게 그것이다. 이는 개혁의 당위성을 알면서도 표 계산에 눈이 멀어 우리 사회의 미래를 갉아먹는 전형적인 ‘망국적 포퓰리즘’이다.

탈모 치료의 건보 적용이나 무차별적 노인기본소득 지급처럼, 표를 얻기 위해 ‘필요 원칙’을 깨뜨려가며 재정을 마구잡이로 살포하는 것은 쉽게 눈에 띄는 포퓰리즘이다. 그런데 건강보험과 기초연금의 보장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는 개혁, 즉 ‘국민 부담을 수반한 재정 확충’ 개혁을 외면하는 포퓰리즘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역시 해악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후자가 더 악성이다. 마땅히 해야 할 구조 개혁을 방치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미래와 지속 가능성을 통째로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포퓰리즘뿐만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는 ‘직무유기형 포퓰리즘’까지 매섭게 감시하기 위해, 이제 유권자인 우리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대 마을버스뿐
  3. 3[도청도설] 발가벗겨진 사우디
  4. 4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5. 5[시민기자] ‘핑크 가을’ 내려앉은 대저생태공원
  6. 6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7. 7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8. 8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9. 9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10. 10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1. 1언론노조·국제 비대위 “대주주 엄벌” 청와대 간다
  2. 2與, 추미애 ‘재정 빨대’ 진화 안간힘인데 기름 부은 부승찬(종합)
  3. 3또 도마 오른 항만공사 통합…“소신없는 사장 책임” 질타
  4. 4[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北 적반하장 용납 못해…추가 도발 감행시 단호하게 대응”
  5. 5[2026 국감 브리핑]조경태 “최고 시스템 갖춘 건기연이 가덕도신공항 부지 침하 연구해야”
  6. 6여도 야도 시중은행 연쇄 해킹 사태 집중 질타
  7. 7"법령 검토해 결정하겠다"던 김지용 중수청장, 국무회의 참석
  8. 8이 대통령 "관행·절차 얽매이지 말고 주택 공급 전격전 펼치길"
  9. 9이 대통령, "생애 첫 연금 지원사업 신청한 사람만? 실질적 불평등"
  10. 10통일부. 北 대남확성기 재개 위협에 “문제 해결 노력에 호응” 촉구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3. 3부산 명물 삼진어묵, 상하이 입맛 잡는다
  4. 4부산 몸집 키우는 해양금융 생태계
  5. 5선원노련 김두영 위원장, ITF(국제운수노련) 집행위 선출
  6. 6이번엔 할리스…고객 개인정보 276만 건 유출(종합)
  7. 7[뭐라노] 금양 부활할까
  8. 8양현재단 20년, 해운·항만 새 항로 모색
  9. 9기술유출 엄단…산업부 ‘특사경’ 도입 추진
  10. 10"원전 사업자 한수원, '안전 미준수' 과징금만 5년간 338억원"
  1. 1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대 마을버스뿐
  2. 2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3. 3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4. 4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5. 5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6. 6어린이집 앞 석면지붕 빼곡…소유주들 빈집 등 이유로 방치
  7. 7상습 음주운전 꼼짝마…후 불어야 시동 걸린다
  8. 8주 15시간 넘기면 인건비 30%↑…생존 위해 쪼개기 고용
  9. 9재개발 조합장 수사 정보 채팅방 올린 공무원 벌금
  10. 10“미래대응기금 조성, 교부세 축소 안 돼”
  1. 1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2. 2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3. 3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4. 4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5. 5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6. 6돈으로 우승은 못 샀다…MLB 월드시리즈 연봉 하위팀 반란
  7. 7‘통산 최다안타 3위’ 손아섭, 두산에서 방출…선수 생명 이어갈까
  8. 8배드민턴 '세계 최강' 안세영, 여자 단식 최다우승 기록세워
  9. 9부산시청 고은, 전국체전 金…女사격 비공인 세계신기록
  10. 10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진짜 질문의 시작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국제칼럼 [전체보기]
원칙이 흔들린 대가
‘빵과 책’·양자경·강말금 그리고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발가벗겨진 사우디
“난 짜장”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LCC 통합 때 약속한 부산 허브 구축, 정부가 이행하라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무색, 제도적 미비점 보완 시급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민족 사회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