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에 빛나는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을 영화관에서 봤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앞 15분 분량을 놓쳤지만 아쉬움은 덜했다. 내달이면 이 영화가 넷플릭스에 올라와 여운이 끝나기 전 놓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는 나름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보통 개봉영화가 스트리밍 플랫폼에 서비스되기까지는 5, 6개월가량 걸린다. ‘가능한 사랑’을 영화관 개봉 약 한 달 뒤 OTT에서 볼 수 있는 건 이 작품을 넷플릭스가 제작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버닝’ 이후 8년 만에 신작을 선보였다. 국내 투자 유치가 어려워 엎어질 위기에 몰렸으나 넷플릭스가 전격 투자·제작을 결정하면서 늦게나마 결실을 얻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 대규모 해고사태를 배경으로 해고 노동자 가정의 삶과 고통을 다룬 이 시나리오를 국내 제작사는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뜻밖에 OTT 대자본이 손을 내민 것이다.
수년 전만 해도 영화계는 ‘OTT가 영화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며 스트리밍 플랫폼에 노골적인 반발을 드러냈다.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자 개봉 없이 스트리밍으로 공개되는 영화에 자격이 있는지를 두고 거센 논란이 일었다. ‘스트리밍 플랫폼 영화는 TV용일 뿐이지 진짜 영화가 아니다’는 말까지 나왔다. 전통 극장산업과 OTT가 정면 충돌한 지점이었다. 그러나 점차 OTT 제작·배급 작품도 ‘진짜 영화’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했다. 오스카상에서 OTT 영화가 다수 노미네이트되는 것은 물론 최고상인 작품상(2022년 애플TV 배급 ‘코다’)까지 거머쥐는 역사를 썼다. OTT 작품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6~15일)에서도 반감을 넘어 ‘주인공’으로 대접받았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가능한 사랑’과 ‘푸른길’(손석구 주연)은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고, 디즈니플러스의 신민아 주연 드라마 ‘재혼황후’는 공식 초청작으로 주목받았다.
‘OTT가 영화를 망칠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간 듯하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가능한 사랑’ 같은 상업 논리로부터 외면받기 쉬운 작품을 만들어 영화의 지평을 넓혔다. 전통 극장산업도 위축되기보다 힘을 받는 모양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는 아이맥스 70㎜ 필름으로 전 장면을 촬영하는 역행을 통해 국내 1200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아날로그 영화’의 건재함을 알렸고,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은 논란 속에서도 관객 수 300만 명을 돌파하며 영화관을 북적이게 만들었다. 제로섬게임이 아닌 플랫폼의 다양화로 상생의 시너지를 내는 영화의 시간이 다시 열렸다.
이선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