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고 길었던 지난 여름, 8월 한 달간 호주 브리즈번에서 생활했다. 남반구에 위치한 지역이라 겨울에도 16-25도의 온화한 날씨가 지속됐다. 이 온화한 날씨가 사람의 마음마저도 온화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 때문일까? 호주 내에서도, 또 가까운 뉴질랜드에서도 브리즈번에 정착하려고 사람이 밀려든다고 한다. 호주 제3의 도시로 300만 명가량 살아가는 브리즈번은 2032년 올림픽 개최로 도시 전체가 활기있고 분주한 표정이었다. 1980년 이전부터 호주에 한국인의 이민이 시작됐고, 본격적으로 1990년대부터 워킹 홀리데이와 이민이 이뤄지면서 그 도시에 한국인은 3만 명가량 살고 있다고 한다.
호주는 다민족 사회이다. 그곳에 머무르면서 다양한 인종을 봤고 또 세계의 음식들도 모두 맛볼 수 있었다. 넓은 땅덩이를 가진 도시라 다운타운을 제외하면 각 지역마다 개별 민족이 모여 사는 형태다. 기본적인 언어나 노동의 적합성만 지니고 있으면 이민과 정착이 유연할 수 있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영주권과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이 이전에 비해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한국인에 대해서는 워킹 홀리데이나 이민의 쿼터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곳에 머무르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것은 교통 법규이다. 운전 좌석이 우리나라와는 반대인 데다 운행 방향도 반대로 되어 있기에, 이곳에서 처음으로 운전하는 이는 몇 번의 역주행을 한다고 한다. 아울러 신호가 많지 않고 로터리로 되어 있기에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운전하기 전 주의사항으로 벌금이 최소 1000호주 달러, 약 100만 원부터 시작한다고 들었고 또 실제로 1200호주 달러를 벌금으로 낸 한인의 경험도 전해 들었다. 기본적인 신호 위반이나 과속뿐만 아니라, 운전 중에 핸드폰을 만진다든가 안전벨트를 제대로 매지 않아도 벌금을 물게 된다. 운전 중에 기도를 가장 많이 바쳤다고 기억한다.
왜 이렇게 엄하게 벌금을 물릴까? 다민족이 살아가기 때문에 각자가 살아온 방식이나 법규는 모두 다르고, 따라서 생활 방식의 다양성만 고집한다면 한 사회가 지탱되기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 입장에서는 호주의 범칙금이 과도하다고 여겨지지만, 다민족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 나아가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차선의 선택처럼 생각됐다. 이 때문에 공공 질서나 법규의 부분에서 엄격하게 적용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는 경제와 사회, 그리고 문화의 분야에서 세계의 표준(standard)이 되어가고 있다. 선진국이라는 나라에 가도 그 나라의 시스템이 시시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양한 외국인이 정착을 시도하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한국인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장단기 체류나 이민은 그 폭이 늘어날 것이고, 몇 천년 단일민족을 자랑하던 우리나라도 어느 때에는 다민족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세계화의 현상을 두고, 경제·종교적 이유로 어떠한 민족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든지 혹은 그 민족이 해롭다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국수주의나 민족주의는 아닐까? 오히려 건강한 다민족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를 지탱하는 공공질서나 법규의 엄격한 집행은 당연하고, 그 사회에 동화될 수 있도록 계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종교가 그 나라의 정신을 대변하지 않는 다종교 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의 표준이 된 우리나라가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품기 위해서는 더욱 명확한 공공질서의 확립과 법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전국민의 70% 이상이 대학 교육을 받고, 사회 시스템을 뿌리내린 우리나라의 공공 질서와 법규의 적용은 탄탄하다. 하지만 더욱 특별한 시민사회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질서와 법규를 사회적 약속이라는 가치로 더욱 강화하며 세계화를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현세의 어느 나라도 완전하지 않다. 그런데도 호주는 다민족 사회의 모델로 여겨진다. 자유로운 분위기, 성실한 노동 준수, 그리고 인종과 민족에 연연하지 않고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준비해야 할 태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