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개봉한 ‘디스클로저 데이’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오랜만에 외계 생명체를 소재로 만든 SF 영화다. 영화는 미국 정부의 비밀 업무를 대행하는 민간기업에서 일하던 한사이버 보안 전문가가 외계 생명체와 UAP(미확인 이상현상)에 관한 극비 자료를 빼돌려 세상에 공개하려 하면서 시작된다. 자료에는 1947년 로즈웰 사건 이후 79년간 은폐돼 온 외계 생명체의 영상과 증거가 담겨 있으며, 미국 정부와 민간기업은 폭로를 막기 위해 그를 집요하게 추격한다.
이 영화에는 인간에게 붙잡힌 외계 생명체가 수술대 위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생체 해부당하는 기록 영상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수많은 영화와 TV 속 외계인들은 놀라울 만큼 서로 닮았을까.
이 영화 속 존재 역시 이른바 ‘그레이(Grey)’의 전형이다. 큰 머리와 커다란 눈, 길고 가는 팔다리와 작은 입.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외계인 목격담 속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득 우리가 외계인으로 그려 온 이 형상이 단순히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성형 AI가 일상에 들어온 지 5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우리의 예측을 앞지르는 속도로 진화하며 우리가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마저 크게 바꾸어 놓았다. 자료 수집과 분석은 AI에 맡기고 인간은 본질적인 질문과 판단에 집중한다. 더 적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해내면서도 삶의 여유까지 누리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AI 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가장 게으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단, 생산적으로.
인류가 오랜 세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해 왔듯 AI가 만들 새로운 환경도 인간에게 또 다른 변화를 촉발할 것이다. 이러한 환경이 새로운 진화의 압력으로 작용한다면 장기적으로 인간의 뇌마저 그에 맞게 재설계되지 않을까. 이 가설을 AI에게 던져 보았다. 물론 이는 과학적 예측이 아니라, 필자가 던진 가설을 바탕으로 AI와 함께 펼쳐본 가상의 시나리오다.
그 전제 아래 AI가 내놓은 답은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인간은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데 기억의 형성과 인출 능력에 크게 의존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해마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방대한 지식을 AI가 대신 저장하고 필요할 때 제공하는 시대에는, 해마를 비롯한 기억 체계가 담당하는 역할의 비중도 줄어들 수 있다.
대신 뇌의 활동은 전두엽이 관여하는 고차원적 사고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될 것이다. AI가 쏟아내는 데이터 사이에서 맥락을 읽어내고, 파편화된 정보에서 숨은 가치를 찾아내며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것, 즉 판단과 응용,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의적 사고가 뇌의 핵심 역할로 자리 잡을 것이다. 뇌의 무게중심이 저장소에서 관제탑으로 옮겨가는 셈이다.
이러한 뇌의 기능적 변화가 수천 세대에 걸쳐 축적되어 두개골의 형태까지 바꾼다고 가정하자 AI는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해마가 위치한 측두엽 부위는 점차 축소되는 반면,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이 발달하면서 이마는 더 넓어지고 앞으로 돌출되며 두개골은 더 크고 둥글게 변합니다. 부드러운 음식이 보편화되면서 턱과 치아는 작아지고, 시각 정보에 대한 의존이 커지면서 눈은 더욱 커집니다.”
팔다리도 마찬가지다. 산업화 이후 육체노동은 줄었지만 마우스와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손의 역할은 오히려 커졌다. 그러나 AI 에이전트와 새로운 인터페이스의 확산으로 이마저 달라지고 있다. Meta의 근전도(EMG) 손목밴드는 손목 근육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 신호를 읽어 손가락 움직임을 디지털 명령으로 바꾼다. 말과 작은 손짓만으로 기기를 조작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여기에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BCI(Brain-Computer Interface)와 피지컬 AI 기술까지 더해지면, 신체적 물리력의 시대는 저물고 생각만으로 원하는 것을 실행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손과 발의 기능은 점차 퇴화할 것이다. 영화 ‘E.T.’에서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아이의 손에 닿던 그 장면처럼, 손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감정을 전하는 상징적인 몸짓으로만 남을지 모른다. 그 모습을 그려 보면 어딘가 익숙하다. 바로 우리가 영화에서 수없이 보아 온 외계인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랫동안 상상 속에서 그려 온 외계인의 형상은 낯선 존재가 아니라, AI 시대가 만들어낼 미래 인류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줄곧 먼 우주를 바라보았지만, 어쩌면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