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란 제목을 접하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먼저 철학자 칼 포퍼가 쓴 책이다. 그리고 포퍼의 책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고 김소진 작가의 소설이다.
포퍼는 1938년 3월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 소식을 듣고 저술을 시작했다. 책에서 전체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열린 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포퍼가 정의한 열린 사회는 ‘인간의 비판력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사회다. 진리의 독점과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말한다. 반면 닫힌 사회는 전체주의와 역사주의에 기초한 사회를 의미한다.
김소진의 소설은 1991년 세상을 떠난 고 김귀정 열사의 시신 쟁탈을 다룬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우리 사회가 열린 사회의 구조로 접근해 가고 있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한국은 닫힌 사회를 거부하고 열린 사회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민주화 운동과 열사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은 열린 사회를 맞이했다. 군부 독재가 끝났고, 정권 교체는 평화적으로 이뤄졌다. 촛불 혁명으로 전 세계에 민주화를 이룬 국가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비록 12·3 비상계엄으로 후퇴할 뻔했지만 오히려 시민의 힘으로 막아냈다. 더는 한국이 닫힌 사회가 아니고 열린 사회라는 것을 보여줬다.
열린 사회에서 정보가 쏟아졌다. 기존 언론뿐만 아니라 인터넷 혁명을 토대로 새로운 매체들이 등장했다. 아울러 SNS를 통해 정보는 실시간으로, 전방위적으로 유통됐다. 유튜브는 영상을 매개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1인 미디어도 흔한 시대가 됐다. 여기에 AI까지 가세했다. 원하는 정보는 1초도 안 돼 얻을 수 있다. 이 정도면 열린 사회가 아니라 완전히 개방된 사회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정보는 넘치지만 유통과 소비 과정에서 편향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과연 열린 사회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맞닥뜨리게 됐다. 20세기 전체주의와 다른 방식의 닫힌 사회가 도래한 것이 아닌가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열린 사회를 위협하는가. 알고리즘을 의심해야 한다.
SNS가 활성화되면서 빈번하게 언급되는 단어가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정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뜻하는 학술용어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플랫폼 회사가 개별 이용자에게 추천할 콘텐츠를 결정하기 위해 활용하는 규칙과 계산을 의미한다. 이용자의 관심사 등을 바탕으로 가장 관련성이 높은 콘텐츠를 추천하는 것이다. 이용자는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보자. 포털 사이트에, 유튜브에, SNS에 떠 있는 콘텐츠를 무심코 클릭한다고 치자. 그러면 관련 콘텐츠가 줄줄이 이어진다. 클릭 한 번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알고리즘이 이끄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문제는 알고리즘이 정치의 영역에서 심각하게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12·3 비상계엄이다.
홍성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알고리즘 중독이 초래한 세계 최초의 내란’이라고 규정했다. 극우 유튜버들의 부정선거 주장에 심취해 헌법기관인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침탈했다는 것이다.
정병국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에 대해 “편향된 알고리즘을 교묘히 악용해 정치를 망치는 유튜버들의 에코 체임버에 완벽히 갇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에코 체임버는 성향이나 신념,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사람끼리 자기에게 맞는 정보만 수용·소비하고 다른 정보나 시각은 차단하는 현상을 말한다.
알고리즘은 여전히 유령처럼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최근 방송인 김어준 씨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몇 년 전부터 정치인을 알고리즘 감옥에 가둬버리는 온라인 작업이 매우 고도화됐다”며 “최근 이재명 대통령에게 그런 작업이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계정을 누군가에게 전수 조사시키고 동시에 본인은 리트윗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어준 씨 주장의 사실 여부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다. 우려되는 점은 알고리즘의 전면 재등장이다. 따지고 보면 문제는 알고리즘이 아니다. 알고리즘을 이용해 왜곡된 여론을 형성하고, 특정 진영을 공격하는 배후 세력이다.
포퍼가 주장했던 열린 사회가 21세기에 성취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알고리즘을 통해 특정 이념을 전파하는 세력에 의해 닫힌 사회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알고리즘 뒤에 ‘그 적들’이 존재한다면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열린 사회는 닫힐 수 있다.
김희국 디지털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