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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다대포해수욕장에서 열린 ‘부산바다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시민. |
요즘 책은 실내를 벗어나고 있다.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청계천에 야외도서관이 들어서고, 이를 본뜬 도서관도 전국 곳곳에 생겨났다. 부산은 바다를 서가로 삼았다. 추석 연휴에 필자는 다대포 부산바다도서관에서 ‘선비들의 독서와 음악’을 주제로 해설과 연주를 했다. 사람들은 책을 들고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왜 책을 들고 바닷가로 나올까? 야외에서 책을 읽다가 클래식 기타와 피리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곳에서는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부담보다 책과 함께 머무는 경험과 시간이 더 중요해 보였다. 혼자 책을 읽으러 왔다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도 야외도서관의 재미다. 책과 음악, 그리고 자연이 함께한 삶을 실천했던 퇴계 이황을 떠올렸다. 그가 지은 도산서당에는 책을 읽고 자연을 가까이한 경험을 시와 노래로 남긴 흔적이 있다.
퇴계가 1561년 완공한 도산서당은 그가 생전에 머물며 공부하고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다. 퇴계는 서당 건물뿐 아니라 주변의 산과 강, 바위와 물가에도 이름을 붙이고 시를 지었다. 세 칸짜리 작은 건물의 방은 ‘완락재’, 마루는 ‘암서헌’이라 불렀다. 서당 앞 연못은 ‘정우당’, 샘은 ‘몽천’, 매화·대나무·소나무·국화를 심은 화단은 ‘절우사’라고 이름 붙였다. 책을 읽는 방과 제자를 가르치는 마루, 꽃을 가꾸는 뜰과 산책하는 길이 그의 일상에 함께 있었다.
그가 특히 아낀 것은 매화였다. 퇴계가 남긴 매화 시는 107수에 이른다. 그는 그중 91수를 ‘매화시첩’으로 엮었다. 매화를 ‘매형’이라 부를 만큼 친근하게 여겼고, 꽃이 추위에 상하면 안타까워했다. 병이 깊어졌을 때는 지저분한 모습이 매화에게 실례가 된다며 화분을 밖으로 옮기게 했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도 매화에 물을 주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매화가 선비의 절개를 상징한다는 설명보다 이 이야기가 퇴계와 매화의 관계를 더 생생하게 보여 준다. 퇴계는 추위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매화를 보며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모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매화는 철학적 생각을 시로 옮기게 한 대상이자 평생의 공부를 일상에서 실천하도록 일깨우는 벗이었던 셈이다.
퇴계의 생활에서 음악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말년에 우리말 시가인 ‘도산십이곡’을 지었다. 앞의 여섯 수에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마음을, 뒤의 여섯 수에는 학문과 수양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그가 직접 쓴 발문에는 아이들이 이 노래를 아침저녁으로 익혀 부르고 자신은 그것을 들으며,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적혀 있다. 퇴계는 자신이 지은 노래가 당시의 음률이나 가락과 잘 어울릴지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읽고 생각한 바를 소리 내어 반복하고, 노래를 통해 마음에 익히고자 한 뜻은 분명하다. 도산서당에서 책을 읽고 자연을 시로 읊던 일과 ‘도산십이곡’을 지은 일이 서로 이어지는 이유다.
그날 다대포에서 누군가는 책장을 넘겼고, 누군가는 자연을 바라보았으며, 필자는 피리를 불었다. 조선의 도산서당과 오늘의 바다도서관은 성격도 시대도 다르다. 다만 책을 읽는 자리에 자연과 음악을 함께 두었다는 점은 닮았다. 선비들의 독서와 음악을 전하기 위해 마련한 무대였지만, 오히려 책을 든 시민들 덕분에 그 이야기가 눈앞의 풍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