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개헌으로 국민의힘을 압박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연임 배제’ 입장 표명 이후 더 이상 반대 근거가 사라졌다는 게 이유다. 민주당은 개헌추진단을 이미 띄웠고 내년 상반기 중 여야 개헌 합의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민주당이 말하는 개헌안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부마민주항쟁의 헌법전문 수록, 권력구조 개편 등이다. 민주당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제시한 바 있다. 국민의힘은 이 정권에서 어떤 개헌 논의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개헌은 민주당 혼자서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개헌 필요성과 개헌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다. 1987년 이후 40년간 유지 중인 헌법의 개정 필요성엔 다수 국민이 공감한다. 국민 기본권, 지방자치 등을 보완해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독재를 막으려고 단임으로 못 박은 대통령제이지만 역설적으로 대통령이 두 번이나 탄핵되는 비극을 겪으면서 ‘87체제’는 수명을 다했다는 생각이 한층 보편화 됐다. 그럼에도 노무현 문재인 정권 때와 같이 이번에도 전망은 매우 어둡다.
개헌은 가장 어려운 개혁 작업 중 하나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추진 세력이나 리더의 진정성이 관건이다. 진정성은 자기 희생에서 시작된다. 개혁의 결과로 본인이 손해를 보더라도 대의를 위해 감수하겠다는 자세가 개혁의 시작이다. 현재 개헌을 추진하는 여권이 동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헌이 집권 연장 혹은 국정 위기 탈출을 위한 국면전환용 꼼수라는 의심을 불식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반헌법적인 내용의 법을 다수 힘으로 밀어붙이는 행태를 불사한다.
올 초 여권이 입법 완료한 ‘사법 3법’이 딱 그런 예다. 법관이 법을 왜곡해 재판할 경우 처벌하겠다는 ‘법왜곡죄’는 무엇이 왜곡인지 기준부터 불명확하다. ‘법관의 양심에 따른 독립 재판’은 헌법이 보장하는 최후의 안전장치(헌법 제103조)이다. 여기에 형사 책임을 물으면 사법부 독립은 근본적으로 흔들린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판단받을 수 있게 한 ‘재판소원제’도 마찬가지다. 법원 판결의 위헌성 판단은 헌재의 권한(헌법 제111조) 밖이다. 대통령 방탄용이라는 의혹을 받는 ‘대법관 증원법’은 삼권 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를 기형화한다는 점에서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민주당이 만든 조작기소특검법안은 위헌적 발상의 결정판이다. 조작기소특검은 법원이 심리 중인 사건을 가져와 재수사하고 영장전담판사를 마음대로 고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검 대상 12건 중 8건이 이 대통령이 피고인인 사건이다. 살아있는 권력을 견제하려고 만든 제도가 살아있는 권력을 위해 움직이는 제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단순히 공소취소 권한을 법에서 삭제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대로 특검이 시행되면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헌법 제11조)는 대전제가 허물어지게 된다.
노태악 후임 대법관 임명을 놓고 벌어지는 청와대의 대법원 압박은 도를 넘었다. 청와대는 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 전 관례상 해왔을 뿐인 사전협의를 마치 대통령의 내락을 받는 과정처럼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가 특정인을 밀기 위해 이 사달을 일으킨 건 세상이 다 안다. 헌법엔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제104조 2항)고 돼 있을 뿐 대통령의 재제청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사법부는 입법부 행정부와 함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자 최후의 보루다. 나라가 아무리 엉망이어도 사법부만 제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사회는 그럭저럭 굴러간다. 하지만 사법부가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기 시작하면 국가 질서는 바닥에서부터 무너진다. 이 대통령 인식대로 임명 권력인 사법부가 선출 권력인 대통령이나 국회 밑이라면 어떻게 박근혜 윤석열을 심판하고 국회의원을 처벌했겠나. 사법부를 대통령 발 아래 두려는 시도 자체가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위헌적 발상이다. 사법부를 선출 권력으로 바꾸는 작업이 멕시코에서 있었다. 국민적 냉소 속에 투표율은 10%대에 그쳤고 그 와중에 당선 결과는 친여 일색이었다. 이 대통령이 바라는 사법부가 이런 그림인가.
대통령은 임기 중 개헌을 해도 연임하지 않겠다고 두 번 세 번 공언했다. 그러나 그런 대통령 자신이 공소취소의원모임 대표를 법무부 장관에 앉히려 시도했고 뜻대로 안 되니 검찰의 대통령 대북송금 수사가 잘못됐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을 검찰총장 직대에 임명했다. 이러니 국민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이 “연임 개헌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법 앞의 평등’ ‘삼권 분립’ ‘법치주의’ 같은 헌법의 기본 가치부터 제대로 지키고, 그리고 나서 개헌을 입에 올리기 바란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