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의 경고음이 일상이 되면서 도리어 위기감마저 무뎌지고 있다. 암울한 출생률 통계와 청년 유출 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지역은 고통을 읍소하고, 중앙정부는 시혜적인 균형발전 특별예산 몇 푼을 쥐여주는 낡은 도식이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 결핍과 쇠락을 증명해야만 겨우 보조금을 타내는 수세적 ‘청원 정치’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이러한 패배주의적 접근은 지역에 자생력 대신 무력감만을 학습시켰을 뿐이다. 시혜를 기다리며 소멸을 두려워하는 단계는 지났다.
이제 관점을 180도 바꾸어 당당한 ‘로컬의 반격’을 시작해야 한다. 반격이란 결코 수도권을 적대시하거나 막무가내로 떼를 쓰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수도권 과밀로 인한 살인적 주거비와 초저출생, 극심한 사회적 비용은 이미 대한민국 전체의 성장판을 닫아걸고 있다. 수도권의 숨통을 틔우고 비수도권이 독자적 활력을 되찾아 쌍두마차로 국가 경제를 견인하는 ‘지속 가능한 윈윈(Win-Win)과 상생’이야말로 로컬 반격이 지향하는 본령이다. 기술과 산업의 지형이 송두리째 바뀌는 범용인공지능(AGI) 대전환기는 지방에 사상 초유의 기회의 창을 열어주고 있다.
반격의 첫 번째 무기는 인구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잣대였던 단순 머릿수 채우기 식 ‘인구밀도’ 경쟁은 인구절벽 앞에서 더는 유효하지 않다. 이제는 지역 내 고숙련 인재와 AI 연산 자원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혁신적 가치를 창출하는 ‘지능밀도(Intelligence Density)’를 높여야 한다. 물리적 거주인구에 집착하기보다는 초고성능 연산 바우처와 데이터 인프라를 집중 지원해 1인당 지능 생산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그래야 지방은 적은 인구로도 고부가가치 지능경제를 이끄는 강소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다.
둘째, 지역의 고유 자산에 천착하는 ‘지역 지능 혁신가’의 육성이다. 수도권의 플랫폼 비즈니스를 무작정 베끼는 단순 추격형 개발자로는 승산이 없다. 부울경이 보유한 압도적 비교우위는 조선, 해양, 자동차, 정밀기계 등 수십 년간 축적된 거친 산업 현장의 실물 데이터다. 현장을 모르는 수도권의 빅테크는 이 폐쇄적인 제조 데이터를 결코 흉내 낼 수 없다. 로컬의 버티컬 현장 데이터를 학습해 글로벌 시장이 필요로 하는 초격차 설루션으로 벼려내는 로컬 엔지니어야말로 반격의 최전선에 설 주역이다.
셋째, 파편화된 행정 칸막이를 부수는 초광역 연대와 ‘디지털 이식’이다. 시·군·구가 각자도생하는 좁은 시야로는 수도권의 거대한 블랙홀을 당해낼 수 없다. 부울경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 경제권으로 묶는 ‘부울경통합특별시’의 출범은 더는 늦출 수 없다. 여기에 대규모 청사나 인력 이전에 매달리던 과거의 물리적 이전 방식을 넘어, 클라우드와 디지털 트윈을 통해 전 세계 고급 두뇌를 지역 연구개발 현장으로 끌어들이는 ‘디지털 이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혁신을 현실로 밀어 올릴 지렛대는 단연 ‘재정주권’이다. 중앙정부가 쥐고 흔드는 꼬리표 붙은 국고보조금 방식으로는 지역의 독창적 기획이 불가능하다. 필자가 앞서 제안했던 ‘법인세 배분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결합되어야 한다. 수도권 대기업이 비수도권에 대규모 R&D 센터와 생산시설을 투자할 때 파격적인 법인세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로컬에서 거둔 국세인 법인세의 일정 부분(약 30%)을 지자체에 직접 배분하여 자주재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로컬의 재정주권 확립은 ‘국민주권정부’를 천명한 이재명 정부의 지방 살리기 정책기조가 진정한 실천 의지를 지녔는가를 입증하는 결정적 가늠자다. 과감한 재정 권한 이양이 뒤따르지 않는 자치분권은 언제나 구두선에 그쳤던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뿐이다. 또한 제도적 인센티브와 실질적 재정 뒷받침 없는 균형발전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수도권 일극 체제의 피로도와 문명사적 기술 격변이 맞물린 지금, 담대한 반격의 무대는 이미 마련됐다. 위축된 피해의식을 던져버리고 우리 안의 산업 데이터, 지능밀도, 초광역 행정통합, 그리고 재정주권이라는 무기를 벼려야 한다. 지역이 스스로 일어서야 대한민국이 산다. 이제 로컬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