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산행을 하면서 변함없는 생각은 ‘산은 좋은 스승이다’는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설산은 우리에게 경외와 영감을 주지만 위험을 감수하며 하얀 정상에 오르려는 순간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지난 7월 30일, 세계적인 산악인 니르말 푸르자의 브로드피크 사고 소식은 우리에게 산의 냉엄함과 인간의 욕망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는 2019년 불과 6개월 6일 만에 8000m급 14좌를 완등하며 세계적인 기록을 세운 산악인이다.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를 48시간 이내에 연속 등정하기도 했다. 그가 파키스탄에서 처음 세운 계획은 가셔브롬2봉만 오르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출발 직전 자신이 오른 8000m급 봉우리들을 세어보다가 생각이 달라졌다. 브로드피크까지 오르면 초오유 하나만 남는다. 14좌를 모두 두 번씩, 그것도 산소통 없이 오른 최초의 산악인이라는 새로운 기록이 눈앞에 보인 것이다. 처음에는 목표가 그를 움직였지만, 어느 순간 욕심이 목표를 바꾸어 버렸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인간의 욕심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대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출발한다. 그런데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서 예상하지 못한 더 큰 성과가 보인다. 더 높은 명예가 보이고, 더 많은 돈이 보이고, 더 큰 성공과 더 좋은 평가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처음의 목표는 어느 순간 뒤로 밀려난다. ‘이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 새 ‘조금만 더’가 된다. 그리고 그 ‘조금만 더’가 끝나면 다시 그 너머의 것이 보인다. 욕심은 묘하다. 하나를 가지면 끝날 것 같지만 하나를 얻는 순간 또 다른 하나가 보인다. 계단과 같다. 한 계단 올라서면 바로 위의 계단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올라가는 일이 아니라 멈출 때를 아는 일인지도 모른다. 욕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인류역사를 보면 더 나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고,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예술과 문명을 발전시켰다. 인간의 욕망은 문명을 움직인 거대한 엔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엔진이 아니다. 운전대를 욕심에게 넘겨주는 순간이다. 돈을 벌기 위해 일했는데 돈이 나를 움직이기 시작하고, 명예를 얻기 위해 노력했는데 명예를 잃을까 거짓을 만들고, 권력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 했는데 어느 순간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순을 정당화한다면, 그때부터 욕심은 삶의 도구가 아니라 삶의 주인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진실마저 욕심의 편에 서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내가 믿는 이야기는 진실이 되고 상대방이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단정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음모라고 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은 진실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 전반에서 토론이 사리지고 편 가르기만 남는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목적이 된다. 정상에 오른 사람도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느냐가 아니라 내려올 때 어떤 모습으로 내려오느냐이다. 사람이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이 ‘그때 조금 참을 걸, 조금 더 베풀 걸, 조금 더 재미있게 살 걸’이라는 말이 있다. 물이 발목까지 차오르면 더 들어가지 말라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무릎을 지나 허리까지 물이 차도 계속 들어간다. 목까지 차오르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비로소 돌아선다. 욕심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더 가지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욕심에는 마지막 계단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멈춰 서서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욕심을 가지고 있는지 끌려가고 있는지, 권력을 사용하는지 권력이 나를 지배하는지?
내려놓는다는 것은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더 귀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것이다. 산행에서는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등정이 아니다. 무사히 내려오는 것까지가 등정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욕심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러나 그 욕심에 운전대를 맡기는 순간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달리게 된다. 엔진은 뜨겁게 돌리되, 운전대는 욕심에게 넘겨주는 게 아니라 끝까지 내가 잡아야 한다. 그것이 욕심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에게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