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하여 부산은 금융도시이다. 한국거래소도 부산에 있고, 기술금융도 그 옆에 우두커니 세워져 있다. 정치인들은 해양금융을 무슨 사탕처럼 부산 선거에 써먹는다. 필자는 어려서 문현동에서 자랐고, 평생을 국내외에서 금융인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 금융업체와 그 어떤 비즈니스도 한 일이 없다. 그런 눈으로 보면 부산에 아직도 국제 자본이 별로 없고, 금융도시라면서 부산은 큰돈이 거의 없다.
금융은 건물이나 공직자들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다. 국제적인 큰돈이 늘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그 돈을 가진 사람들이 있거나, 그들이 부산을 드나들어야 한다. 싱가포르나 스위스가 금융도시를 육성시킨 것은 정부 부처의 이동이 아니라, 큰돈 가진 사람들을 국적 불문하고 환대하고 더 성장하게 해준 덕분이다.
그런데 근년의 부산은 그런 도시의 정무적 행정적 기류가 아니다. 시민의 정무기류로는 이건 시간이 가도 쉽지 않을 문제이다. 현재 부산의 도시 거버넌스 체제도 도시가 인간다운 삶을 지원하는 사람 중심의 도시행정을 강조하는 시민정치 이력의 정치 철학을 지닌 지역 정치인이 시장을 맡았다. 이것은 얼마 전 많은 시민이 한 선택의 결과이다.
부산은 말과 현실이 다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산은 항구도시이다. 어려서 새벽 공부를 좀 할라치면 늘 오륙도 외항으로 드나드는 뱃고동 소리가 잠을 깨워주던 도시가 항도 부산이다. 그런 부산은 지금 시민의 바다와 접근 거리도 이전보다 멀고, 마음은 항구와 더 멀다. 차라리 외지인들이 더러 항구를 보러 아직도 부산에 온다.
부산은 전국적으로 압도적 크기의 도매 상업도시였다. 국제시장을 필두로 부산진시장 부전시장 해서 전국에서 모인 소매상이나 산매상들이 바리바리 물건을 떼러 오던, 온갖 물건과 전대(돈주머니)가 산더미 같던 도시이다. 그러나 명색이 아직은 도심이거나, 사람이 좀 있다는 주거지역 가게조차도 대낮에 인적이 드문 곳이 많다. 도무지 부산 사람들에게서 이전의 탄탄하던 상인 정신도 찾아보기 힘들다.
부산은 한국 수출 상품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였다. 도시 내의 생산 기반이나 생산성은 한국 어느 도시가 견주지 못하는 우월한 생산도시였다. 요즘 미국이 전쟁까지 동원해가며 회복시키려 하는 그 소중한 생산 기반은 지금 부산 도시 안에 이전의 화려한 그 위용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인공지능이 온갖 공포로 저무는 산업사회를 휘젓는 지금, 말만 번듯한 정책으로 부산을 살리는 일은 거의 해보면 아마도 무망한 일일 게다. 이제 그 실마리는 역사에서, 지정학에서, 우리 부산 사람들의 삶의 갈피에서 그나마 단서를 찾아야 한다.
우리 부산보다 크고 오랜 세월 항구도시이자 공업도시이던 요코하마는 일본이 엔고로 공업을 떠나보내면서 오래 쇠락의 길을 걷다가 요즘 바다와 항구로 조금 일어서고 있다. 그들은 공장과 창고와 선창으로 만들었던 항구를 다채로운 복합도시 공간으로 바꿔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부산의 북항과는 개념의 실용성과 경제성이 다르다.
부산의 재기를 두고 거창한 소리가 많지만, 근본의 문제는 더 크다. 바로 다른 지방들이 더 이상 하나둘 중앙정부로부터의 발전 지원을 기대지 않고 홀로 서려고 하는 자세들인데, 아직도 부산 정치 구호는 중앙과의 관계성이다.
지금 전남광주는 통합특별시가 되면서 중앙정부로부터의 세간 살림 밑천으로 지원을 받은 반도체 단지를 기반으로 지역 내 미래산업의 생산 기반을 서둘러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한다. 어찌 보면 본격적인 인공지능 주도의 기계지능 생산과 투자 시대를 앞두고 전남광주는 홀로서기의 타이밍을 잘 잡았는지도 모른다. 전남광주는 이를 기반으로 지역 현실에 맞는 생산 기반을 만드는 노력이 요즘 눈에 들어온다. 대구·경북도 머지않아 단합해 생산과 투자 지역으로 결집하고 분발할 것으로 짐작이 간다.
그러나 부산은 인근 경남과의 소식이나, 울산과의 동정에서 그런 기미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사실 부산은 부산 자체의 문제만으로도 시급히 생산화되고 국제적인 투자 개방도시로 변해야 한다. 경남과 울산의 눈치나 의사를 물어볼 한가한 때가 아니다. 바로 젊은 부산 시민의 미래 삶의 준비가 너무 부족하고 소홀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제2 도시 로테르담은 수도인 암스테르담과는 다른 콘셉트로 낡은 도시를 혁신해 왔다. 암스테르담은 과거를 오늘에 발현하는 방식이라면, 로테르담은 종래의 항구와 공업지대를 새로운 미래의 창으로 혁신하는 방식이다. 도시의 디자인도 개방적이고 공간 구조도 복합적이며 생산적이다. 로테르담의 대학들은 개방적인 학풍으로 세계의 젊은이들을 모으고 있다.
바다 도로의 기능성을 위주로 설계한 시설물인 광안대교와, 청년들의 미래 상상력을 키워주는 로테르담의 크지 않지만 가슴을 키우는 에라스뮈스 다리를 가보라. 그들은 그 도시의 대철학자 에라스뮈스를 흐르는 강물 위에 시설 담론으로 세워두고 매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