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컨테이너선으로는 처음으로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출항 22일 만에 최종 목적지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도착했다. 837TEU를 실은 아크로호는 지난달 22일 부산항 신항에서 출발, 북극해를 통과해 지난 12일 첫 기항지인 영국 펠릭스토우항에 도착한 뒤 하루 뒤 로테르담항에 다다랐다. 애초 예정일보다 이틀 늦었으나 일정에 큰 차질 없이 편도 운항을 마친 것이다. 베링해협을 거쳐 척치해 동시베리아해 등 6400㎞에 달하는 북극해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해빙으로 인해 운항에 위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아크로호 시범운항은 정부의 북극항로 개척 국정과제의 일환으로 시행됐다. 국적 컨테이너선이 수에즈운하 대신 북극해로 이동, 아시아와 유럽 간 해양물류의 상업적 가능성과 안전성을 실증하는 게 목표였다. 특히 러시아 쇄빙선 지원 없이 운항해 의미를 더했다. 아크로호는 폴란드 그단스크항에 기항한 뒤 다시 북극해를 지나 내달 12일 부산항으로 귀환할 예정이다. 복항 일정은 남았으나, 정기 상업운항 가능성을 키웠다는 평가가 조심스레 나온다.
북극항로는 동북아시아와 북서유럽을 잇는 최단 해상 노선으로, 지난 수세기 개척 노력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최단거리·시간 확보로 절약하는 비용이 쇄빙 등 북극항로를 지나는 경비로 상쇄되고, 겨울에는 항해가 힘든 계절적 한계도 뚜렷했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북극온난화가 지구 평균보다 4배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해빙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녹아내리자 북극항로의 경제적 이용 가치에 관한 국제사회 관심이 커졌다.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위기가 역설적으로 물류비용·시간 단축의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 셈이다. 기존 수에즈 운하 항로 대비 운항거리는 약 30~40%, 시간은 10~15일가량 감축될 것이라는 전망은 기대를 높였다. 여기에 올해 초 터진 중동전쟁이 대안 항로 갈증을 심화시켰다. 호르무즈해협 바브엘만데브해협 등 현대전이 물류 통로를 틀어쥐는 양상으로 전개되자 세계는 대안 수송로에 관심을 돌렸다. 아크로호 시범운항 일주일 전에 중국은 처음으로 계절(8~10월) 정기운항 화물선(시레전드의 컨테이너선 두바이타워호)을 띄웠다. 북극항로 개척을 둘러싼 세계 경쟁이 본격화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북극항로의 꿈을 20여 년 전부터 키워 왔다. 노무현정부는 한국 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건조사업에 착수하며 극지 진출의 토대를 다졌다. 박근혜정부 때인 2013년에는 현대글로비스가 벌크선으로 국내 첫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성공했다. 이번 아크로호 시범운항은 우리 배로 해운물류의 핵심인 컨테이너선 항로의 상업적 활용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더 나아갔다.
정부는 2030년 북극항로 상업 정기운항을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실제 상업화까지는 난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쇄빙선 없이 운항할 수 있는 기간이 여름철 두 달 남짓에 불과한 데다, 러시아 관할 해역을 통과해야 하다 보니 정치적 변수까지 더해져 대체 항로로서의 실익은 아직 미지수다. “상업적으로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전문가 지적에 여전히 무게가 실린다. 중국이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북극해를 통과하는 정기 운항을 시작한 것 역시 상업적 목적보다는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한 지정학적 셈법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병합, 북극항로 통제권을 쥐려는 이유도 중·러를 동시에 견제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라는 설명이다.
미·중·러 지정학적 패권 다툼이 더해지고, 북·중·러 밀착과 서방의 대러 제재 등 국제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우리는 철저히 실리적 수송로 확보에 집중, 상업적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북극항로 개척 목표에 다가가야 한다. 아크로호 항해를 두고 유럽 일각에서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위반이 될 수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 균형 잡힌 행보로 실익을 챙길 ‘외교의 시간’이 열린 셈이다.
나아가 아크로호 시범운항으로 본격화한 정부의 북극항로 개척사업을 발판 삼아 부산은 ‘북극 관문도시’로 쐐기를 박자.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는 대표적 ‘남극 관문도시’다. 한국 극지연구소(KOPRI)를 비롯, 세계 주요국의 남극 공동연구·탐사·물자수송 기능이 모인 허브다. 부산은 북극 거점의 최적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동북아 중 북극항로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가장 짧은 수송거리와 운항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입지적 우위를 갖춘 도시이기 때문이다. 크라이스트처치의 ‘국제남극센터’(사진)처럼 극지 체험·전시교육 랜드마크도 만들어(가칭 ‘국제북극센터’) 시민 이해를 높이고 ‘북극항로 부산 시대’를 대내외에 각인시키는 방안도 추후 고려할 만하다.
이선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