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패션 브랜드를 시작하고 운영하면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왜 서울이 아닌 부산인가”다. 창업 자체가 어디서나 어려운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패션과 디자인 관련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돼 매 순간 물리적 한계와 마주하기도 한다. 원단과 부자재 수급, 봉제 공장, 유통과 미디어 노출 등 거의 모든 단계에서 이동에 따른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이 든다. 생존과 모두 직결된 문제다.
이처럼 막막했던 창업 초기, 가장 실질적인 디딤돌이 된 곳은 ‘부산 패션 창작스튜디오’였다. 스튜디오는 지역의 유망한 신진 청년 디자이너들을 발굴해 개별 작업 공간부터 시제품 제작과 룩북 촬영, 국내외 판로 개척, 마케팅 교육까지 브랜드 운영 전반을 밀착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거점이다. 홀로 서기를 시작한 청년 창업가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부산에서 패션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각자 다루는 아이템도,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도 저마다 달랐지만 마주한 현실적인 고민은 놀라울 만큼 같았다. 어떻게 하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지, 어떻게 지속 가능한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지, 치열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창작스튜디오를 거치며 공동 전시나 팝업 스토어를 함께 준비했던 경험은 브랜드 운영의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혼자였다면 엄두를 내기 힘들었을 오프라인 행사들을 함께 치러내며 서로의 실무 노하우를 나눴고, 자연스럽게 깊은 정보 교류가 이뤄졌다. 창업 초기 겪는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고립되지 않고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곁에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금전적 지원보다 큰 힘이 됐다.
이후 창작스튜디오에서 만났던 매니저분의 추천을 계기로 부산경제진흥원이 주관하는 청년 로컬크리에이터 육성 사업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만남의 지평은 더욱 넓어졌다. 이 사업은 부산만의 고유한 이야기와 특색 있는 자원에 청년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더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사업화 자금 지원은 물론이고 전문가 멘토링과 브랜딩 교육 등을 통해 청년 브랜드가 지역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고 자립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패션 분야에만 머물던 시선은 식음료, 가구, 라이프스타일, 공예 등 전혀 다른 영역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꾸려가는 창작자들에게로 확장됐다. 대를 이어 가업의 맥을 지켜가는 오랜 기업부터,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과 철학을 담아 작게 시작한 신생 브랜드까지 다양한 층위의 로컬 브랜드를 만날 수 있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다루는 분야와 제품의 형태는 완전히 다를지라도, 브랜드를 만들어가며 겪는 본질적인 고민은 패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제품 하나를 세상에 내놓기까지 쏟아 붓는 수많은 연구와 제작의 고단함, 한정된 자원 속에서 판로를 뚫어내야 하는 막막함, 고객에게 진심 어린 브랜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까지 모두가 꼭 닮아 있었다.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대표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깊은 공감대가 형성됐고, 각자의 자리에서 부산이라는 지역을 딛고 묵묵히 자기 색깔을 내는 이들을 보며 깊은 동질감과 함께 담담한 존경심이 들었다.
돌아보면 사업을 키워나가는 결정적인 기회나 새로운 돌파구는 늘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과의 대화, 우연한 자리에서 생겨났다. 전혀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지 못한 연결고리가 생기고, 그것이 새로운 협업이나 다음 단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패션과 F&B가 만나고, 공예와 라이프스타일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로컬만의 시너지는 그 자체로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이 된다. 그렇기에 부산의 청년 기업과 로컬 브랜드들이 서로 교류하고, 함께 모여 대중에게 브랜드를 선보일 수 있는 전시나 팝업의 기회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 거창한 행사나 일회성 축제보다는, 실질적으로 브랜드들이 모여 부딪히고 연결될 수 있는 장이 꾸준히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 외딴섬처럼 떨어져 버티기보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연대할 때, 부산 안에서 청년 브랜드들이 자생할 수 있는 단단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