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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난 쌍둥이는 어떤 운명을 가질까. 삶은 어떨까. 어린 시절에는 분간하기 어려웠던 얼굴도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변한다. 성격과 표정, 분위기도 각자의 경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그렇다면 같은 명(命)을 받은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르는 진정한 요인은 무엇일까.
운명이라는 개념은 복잡하다. 그것을 만들어가는 변수 또한 한둘이 아니다. 사주와 관상은 그 가운데서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사주팔자가 같다고 해서 운명도 비슷할 것이란 짐작은 오산이다. 쌍둥이라도 품는 뜻이 다르고,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이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가 도교의 경전 《태상감응편》에 전해진다.
송나라 때 고효표와 고효적이라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행동과 말투, 재능까지 닮았던 두 사람은 과거시험을 앞두고 당대의 유명 관상가 진희이에게 관상을 보였다. 진희이는 두 사람에게서 맑은 기운과 총명한 안광(眼光)을 보고, 모두 과거에 급제할 사람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시험을 치르기 위해 친척 집에 머무는 동안 형제의 행로는 엇갈렸다. 형은 공부에 전념했지만, 동생은 이웃집 젊은 과부와 정을 통했다. 일이 알려지자 여인은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 얼마 후 두 형제를 다시 만난 진희이는 크게 놀랐다. 형의 눈썹과 눈에는 여전히 좋은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동생에게는 이전과 다른 기색이 나타났다. 과거에 급제할 기색은커녕 요절할 기미마저 보인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형은 과거에 급제해 훗날 높은 벼슬에 올랐고, 동생은 낙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사주는 태어난 연월일시의 기운을 문자 체계로 표현한 일종의 초기 조건이다. 어떤 계절의 기운을 타고났는지, 어떤 성향과 가능성을 지녔는지를 가늠하는 출발점이다. 여기에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만나는 운이 더해진다. 그러니 초기 조건이 삶의 결과, 즉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맞닥뜨리는 환경과 경험, 맺어가는 관계와 선택에 따라 기운이 다르게 발현되고, 삶의 모습도 달라진다.
관상은 그 변화의 흔적을 살피는 일이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신체적 에너지가 기본이 된다. 이 바탕 위에, 어디에서 무엇을 먹고 자랐는지, 누구를 만나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가 표정과 눈빛, 몸가짐에 흔적을 남긴다. 그게 관상이다. 생각하는 방식이 표정에 배게 되고, 같은 표정이 반복되면서 눈빛과 기색은 그 사람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관상은 단순히 얼굴의 생김새를 따지는 일이 아니다. 그 얼굴이 만들어지기까지 한 사람의 시간을 보는 일이다.
정해진 운명은 없다.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사주나 관상을 좋고 나쁨으로만 판단해 자신의 운명을 단정할 필요도 없다. 사주와 관상은 삶의 가능성을 살피는 하나의 방식일 뿐, 삶의 결론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타고났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있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난 쌍둥이의 삶조차 서로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