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BTS를 정말 좋아해요. 한국에도 꼭 가보고 싶어요.” 지난 8월 독일 라이프치히의 한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던 중 뜻밖의 한국말이 들려왔다. 식당에서 일하던 독일의 젊은 여성이었다. BTS와 K-드라마를 좋아하다 보니 한국어까지 배웠다고 했다. 참으로 묘한 만남이었다. 나는 300여 년 전 바흐의 음악을 찾아 라이프치히에 왔고, 그녀는 오늘의 BTS를 따라 한국에 가고 싶어 했다. 과거의 문명을 찾아 유럽으로 간 나와 현재의 문화를 따라 한국을 꿈꾸는 그녀가 작은 숙소에서 시간과 국경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것이다.
개인사로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독일의 여러 도시를 찾았다. 라이프치히에서는 바흐가 봉직했던 성 토마스교회에서 그의 음악을 들었고, 베를린에서는 분단과 통일의 기억이 도시의 일상에 남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함부르크에서는 브람스가 남긴 음악과 삶의 흔적을 따라 걸었고, 비텐베르크에서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현장을 만났다. 도시마다 방문 이유는 달랐지만 그 도시만의 시간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도시의 힘은 새 건물의 높이나 개발사업의 크기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역사와 예술, 시민의 삶을 오늘의 사람들이 다시 경험하고 공감하게 하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도시를 움직이는 힘이 과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흐와 루터는 독일의 과거가 오늘의 나를 그곳으로 불러들인 힘이다. 반대로 BTS와 K-드라마는 한국의 현재가 독일의 젊은이를 미래의 한국으로 불러들이는 힘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유럽의 오래된 문명을 동경하며 그들의 도시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제 세계의 젊은이가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문화를 동경하며 우리 도시를 바라본다. 문화적 이동 방향이 서로를 향해 교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유행이나 관광객 증가 이상의 변화다. 대한민국의 도시들이 세계와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부산도 그 전환의 한가운데 있다.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 산업과 일자리의 약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누군가는 부산을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 부른다. 뼈아픈 경고이지만 부산의 운명일 수는 없다. 역설적이게도 부산의 인구는 줄어드는데 부산을 찾는 외국인은 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K-컬처, 바다와 산이 맞닿은 풍경, 개항과 피란수도의 역사도 새롭게 주목받는다. 부산은 축소되는 도시인 동시에 세계에 의해 다시 발견되는 도시다.
그렇다면 부산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답은 바깥의 성공 모델을 빌려와 덧씌우는 데 있지 않다. 부산이 축적해 온 시간, 바다가 빚어낸 삶, 오늘 생산되는 문화를 하나로 연결하여 스스로 성장의 힘을 만들어야 한다. 도시 내부의 자원과 사람의 역량에서 미래를 일구는 ‘내발적 발전’을 말한다. 기억은 부산의 정체성을 만들고, 바다는 부산의 삶과 공간을 빚으며, 동시대의 문화는 이를 세계와 소통하는 언어로 바꾼다. 이 셋이 흩어져 있으면 과거의 유산과 관광의 대상, 일회성 행사에 머물지만 하나로 이어지면 어느 도시도 대신할 수 없는 ‘부산만의 문명’이 된다.
먼저 시간을 지우지 않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개항과 피란수도, 부산항과 산복도로, 어촌과 전통시장에 쌓인 삶을 낡은 과거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 베를린이 분단의 상처를 지우지 않고 평화와 통일을 생각하게 하는 도시가 되었듯이, 부산도 전쟁과 피란의 기억을 포용과 인류애라는 미래 가치로 전환해야 한다. 오래된 것을 얼려두자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자는 것이다. 과거를 지키는 일과 미래를 만드는 일은 서로 반대편에 있지 않다. 깊은 과거와 역동적인 현재가 만날 때 도시는 시간을 건너 사람을 불러들인다.
바다도 바라보는 대상에서 경험하고 사랑하는 삶의 공간으로 바꾸어야 한다. 부산의 바다는 해수욕장이나 조망만을 뜻하지 않는다. 항구와 어촌, 해양생태와 수산업, 섬과 해안길,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노동과 기억이 결합된 문명이다. 바다를 소비하는 관광을 넘어 바다를 이해하고 보호하며, 그 삶을 지켜온 사람들을 존중하는 체류와 공감의 문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부산은 오늘의 문화를 스스로 생산하는 도시여야 한다. 외부에서 완성된 문화를 일회적으로 소비하는 것만으로 부산의 문화가 자라나진 않는다. 부산의 창작자들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작업하며, 부산의 역사와 바다에서 새로운 영화와 음악, 공연과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문화도시는 이름난 문화를 많이 가져오는 곳이 아니라, 오직 그곳에서만 태어날 수 있는 문화를 세계인이 만나고 싶게 만드는 도시다.
언젠가 라이프치히에서 만난 그녀가 한국에 온다면 부산까지 발걸음을 이어주면 좋겠다. 바다만 보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피란과 포용의 기억, 항구 사람들의 삶, 그리고 이곳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음악과 영화를 만나기 바란다. 나는 바흐를 만나기 위해 라이프치히를 찾았고 브람스의 교향곡을 들으며 함부르크를 걸었다. 이제는 ‘부산의 것’을 만나기 위해 시간과 국경을 건너오는 발걸음이 이어져야 한다. 부산다움이 문화가 되고, 그 문화가 다시 세계인을 부르는 도시. 그것이 부산이 만들어야 할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