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러닝이 유행이라지만 나는 걷는 게 좋다. 일하다가도 슬쩍 나서는 나만의 동네 한 바퀴. 시장을 끼고 있는 사무실 동네는 대부분 평지라 걷는 맛이 있다. 작은 가게들을 기웃거리며 골목을 돌아다니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걷는 동선은 대개 비슷하지만 한동안 지나지 않던 골목에 접어들면 뜻밖의 풍경을 만난다. 건물을 헐고 공사를 하고 있거나, 업종이 바뀌어 낯선 간판이 걸려 있기도 한다.
기억은 이기적이어서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믿게 한다. 그래서 불과 며칠 전까지 있었던 듯한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으면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언제 없어졌지. 나만 모르는 사이에 무슨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도 있었나. 아리송한 기분을 안은 채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선가 커피 볶는 냄새가 난다.
빛바랜 하늘색 단층 기와지붕의 할매슈퍼가 아른거린다. 간판과 달리 젊은 남자가 운영했다. 과자랑 음료며 책도 팔았다. 나무 테이블을 갖춘 시골 카페 같은 분위기가 정다웠다. 이 자리에는 지금 필로티형 5층짜리 빌라가 들어서 있다. 두어 집만 올라가면 내가 좋아하는 식빵을 팔던 작은 빵집이 있었다. 지금은 네일숍이 되었다. 상점 앞 자동인형이 “산책하는 맛이 삼십 퍼센트 줄었습니다” 말하는 듯하다.
늘 사람들이 줄을 서던 식당 두어 곳도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없다. 이런저런 가게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네컷사진관과 가챠샵 같은 요즘 가게들이 들어섰다. 가게가 바뀌면 골목의 풍경도 달라진다. 오가는 사람들의 나이와 옷차림이 달라지고, 공중에 떠도는 말의 억양도 달라진다. 그런 표정들이 겹겹이 쌓이면 골목의 얼굴이 된다. 표정이 너무 자주 바뀌면 어떤 얼굴이 진짜인지 모르지만.
어린이가 보기 드문 어린이놀이터가 보인다. 두 개의 긴 벤치와 조그만 정자. 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어르신들이 아무도 없다. 그늘이 드리운 텅 빈 정자에 앉아본다. 고요하다. 낯선 적막이 어색하면서도 좋다. 누구 험담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가올 끝을 아는 듯 매미들이 일제히 울어댄다. 한바탕 쏟아내고 잠잠해졌다가, 숨을 참았다 내뱉듯 다시 시작한다. 대숲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 같기도 하고 기습적으로 쏟아지는 소나기 같기도 하다. 나른함과 권태의 BGM.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등을 바닥에 붙여본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반짝인다. 빔 벤더스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어느 오후 같은 시간. 두리번거리다 한쪽 구석에 봉선화가 무더기로 피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하, 이런 곳에 숨어 있을 줄이야. 눈이 환해진다. 태양이 뜨거울수록 하늘은 더 파랗고 구름은 더 희다. 어느 해 여름,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아래 누워 올려다본 하늘처럼. 누우니 자고 싶다 했던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문장.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태양, 바람, 수면이다. 그것이 만고의 진리이다.” 이 문장에 기대어 자고 싶은데 바람이 불지 않는다.
지난봄, 일로 간 부산에서 대연동에 들렀다. 밀면 먹으러. 어린 시절 살던 동네다. 옛 동네는 지명으로만 남아 있을 뿐, 커다란 건물이며 골목도 낯설기만 했다. 장소가 사라지면 그곳에 닿아 있던 기억의 시냅스도 함께 끊어지는 것일까. 예전에 부산에 가면,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을 눈에 담다가 삼일/삼성극장을 지나 보림극장 간판을 보고서야 ‘이제 부산에 왔구나’ 안심하곤 했다. 그것도 꽤 지난 일. 이제는 그런 표지들이 사라졌다. 아, 바다가 들으면 서운하겠다.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노래 하나가 입가에 맴돈다. ‘여름은 가도 좋으리/푸른 바다 파도는 남아/아름다운 추억을 노래하겠지…’ 이정선이 만들고 여성 듀오 두송이가 부른 오래 전 노래. 이번 여름은 바다도 한 번 못 보고 지나간다. 그래도 시집을 냈고 난생 처음 수술대에 누워봤다. 치렁치렁 줄을 매단 채 며칠을 병원에서 보내기도 했다. 여름이면 또 열병처럼 가보고 싶은 병산서원 대신 덕수궁 배롱나무는 가서 보았다. 이만하면 되었나. 여름은 이제, 가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