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요새 깜빡깜빡하는 것이 기억력이 영 별로예요. 이러다 치매 오는 건 아니겠죠?”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 것이 남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이런저런 몸의 기능이 떨어지는데 뇌라고 예외는 아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뇌력 저하 현상’을 넋 놓고 가만 지켜만 볼 수는 없다. 손써볼 수 있는 것은 손을 써야 한다. 기억력도 예외는 아니다. 방법이 다 있다.
이제부터 건망증을 물리칠 방법을 알려드린다. 그리 어렵지도 않다. 당장 실천해볼 수 있다. 이름하여 ‘건망증 퇴치 13계명’이다. 뭐든 소리 내어 말하고 눈으로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하자. 가령 “지갑을 책상에 둔다”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고, 눈으로 확인한다. 그렇게 되면 정보가 뇌에 3중(입·귀·눈)으로 저장된다. 특히 눈으로 볼 때 사진 찍듯 눈까풀로 ‘찰칵’해본다(손흥민 선수의 찰칵 세리머니를 따라 해도 좋다). 사진도 그렇지만 정보가 뇌에 새겨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물건 두는 곳을 정해놓는다. 이를테면 외출 필수품인 핸드폰 지갑 열쇠 안경 등은 출입구 가까이에 자리를 정해 언제나 거기에 둔다. 그러면 나갈 때마다 일일이 찾으러 다닐 일이 없어진다. 생각해보라, 이런 물건을 찾아 헤매는 건 늘 두던 곳이 아닌 다른 자리에 둬서다. 결국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찾는 수가 많은데 이것들이 발이 달린 것이 아니라 내가 딴생각하면서 무심코 내팽개친 것이다.
여러 개를 기억해야 할 때는 종류별로 분류해 기억하면 쉽다. 암기의 달인들은 이런 방법을 쓴다. 예를 들어 학교 비행기 연필 소나무 우산 기차 토마토 무궁화 야구 소년을 외운다고 치자. 정해준 순서를 지킬 필요가 없다면 탈것(비행기·기차) 식물(소나무·무궁화·토마토) 교육(학교·소년·연필) 손에 잡는 것(우산·야구)으로 외우면 잘 기억된다. 의미가 부여되면 암기가 더 잘된다.
이미지를 상상하며 외우면 눈으로 본 듯 기억된다. 아니면 노래를 만들어도 좋다. 같은 시(詩)도 노래로 된 시(가곡)는 저절로 외워진다. 독도(獨島)에 관한 정보를 우리 국민 누구나 다 아는 것은 노래 때문이다. 외우기 어려운 것도 아는 곡조에 붙여보면 입에 착 붙는다. 영화 ‘기생충’에도 나오지 않던가.
처음에 안 외워져도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영어 단어 외울 때 그랬던 것처럼 익숙해질 때까지 입으로 발음해보고 손으로 써본다. 정보가 ‘온전히’ 입력되면 오래 ‘저장’된다. 사람 이름도 쉽게 안 외워지면 이름 뜻을 생각하거나, 비슷한 유명인의 이름과 연결 지어 외우면 좀 쉽다.
하지만 내 기억장치가 고성능 HBM 칩은 아니다. 다 외울 수는 없다. 그럴 때는 보조 기억장치를 활용하자. 먼저 메모하자. 작은 수첩, 메모지와 펜을 가지고 다니며 기록하자. 가지고 다니기가 번거로우면 핸드폰 앱을 써도 좋다. 메모하면서도 기억된다. 달력도 활용한다. 중요한 약속, 예매, 납부 기일 등을 머릿속에만 저장해 놓으면 실수할 수 있다. 반드시 수시로 들여다보는 달력에 표시해둔다. 요즘엔 핸드폰의 일정표 성능이 기가 막힌다.
그래도 안 되면 가족에게 부탁한다. PC가 다운돼 공들여 써 둔 문서가 홀라당 날아간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번 호되게 당하면 중요한 문서나 사진을 여러 곳에 백업해두는 습관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은 가족에게 백업하라. 그때가 되면 누구라도 이야기해 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날짜와 요일을 생각하자. 진료실에서 물어보면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다. “매일이 노는 날이라 날짜가 안 중요해요” “노인이 날짜 알아서 뭐하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신경과 의사로서는 오늘 날짜도 모르는 사람은 ‘인지장애 의심=요주의 인물’이다. 그러므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9월 4일 금요일”이라는 식으로 확인한다. 더해서 9 곱하기 4는 36이라고 간단한 암산으로 머리를 풀고 시작하자(12월에는 좀 힘들겠지만, 매일 하다 보면 어려울 것 없다).
반대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잘 때는 그날 일을 떠올려 본다(복습). 오전에 무엇을 했고 오후에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났는지를 생각하고 내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볍게 생각해보라. 그러면 그날이 내 인생에서 실종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과정을 글로 옮기면 일기가 되는 것이다.
모임에 나가기 전에 만날 사람의 이름을 미리 생각해두면 좋다(예습). 누가 나올 것인지 이름을 한번 불러보고, 얼굴도 떠올려 본 후에 가면 이름을 몰라 당황할 일이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에 집중하자. 뇌도 한계가 있다. 다 외울 수는 없다. 요약하고 정리해 핵심만 기억하자. 나이 들면서 책을 읽어도 잘 기억 못 한다는 사람이 많다. 젊어서는 별명이 ‘제록스’나 ‘사진기’였던 사람도 어쩔 수 없다. 한 단원이 끝나면 핵심 내용을 한 단어나 문장으로 압축하자. 이제 원판 ‘복사’는 포기하고 압축 요약한 ‘집(zip)’으로 가자. 잘 이해됐으면 이 칼럼을 압축·요약해보자. ‘삼중-고정-분류-상상-노래-반복-메모-달력-가족-날짜-일기-미리-핵심’이다. 동병상련 처지의 의사가 드리는 암기의 꿀팁이니 부디 적극 활용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