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 엔드(Peak End)’ 법칙은 ‘정점(피크)’과 ‘마무리(엔드)’가 전체 경험의 평균으로 기억된다는 심리학 용어다. 이를 뒷받침하는 실험이 ‘차가운 물에 손 담그기’다. 한번은 얼음물에 10분간 손을 담갔다가 빼고, 다른 한번은 똑같이 얼음물에 손을 담그지만 미지근한 물로 바꿔 5분 더 있다가 빼는 실험이다. 그나마 다시 하고 싶은 방식이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두 번째를 꼽는다. 고통의 시간은 10분으로 같아도 두 번째는 끝에 조금 따뜻했던 기억이 부정적인 경험을 희석한 것이다. 인간관계도 마지막 모습이 결정적이기 마련이다.
20여년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서한 20여 점이 공개됐다. 눈길을 끈 건 권부에서 밀려난 참모나 측근들에게 보낸 편지다. 과오를 범해 한직으로 밀려났거나, 정적으로 변했거나, 심지어 감옥 신세를 진 이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른 뒤 친필로 써내린 편지를 보내 위로했다. 반혁명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육군참모총장,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곤욕을 당한 대학총장 등이 박 전 대통령의 편지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병 주고 약 주나 싶지만, 성의를 다해 인간적인 미안함을 표했다는 시각이 있다.
지난달 30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 출장길에 오른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공항에서 출국을 취소했다가 번복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비행기 탑승 직전에야 이재명 정부 2기 내각에서 자신이 교체 대상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등과 양자 면담을 취소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후임자 취임까지 전임자 임기가 계속된다는 판단에 따라 일정을 재개했지만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본인의 거취조차 대통령과 소통 못하는 사람을 상대국 카운터파트가 얼마나 진지하게 대할지 의문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비슷한 일이 한두 번 아니다. 호주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던 이명구 전 관세청장에 이어 최근엔 대미통상협상을 주도하던 여한구 전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도 그랬다. 교체 사유에 대한 설명이 없는 사실상의 ‘경질’이었고 온갖 억측만 난무했다. 경질 당사자의 책임 여하야 어떻든 국격에 맞지 않고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공항에서 인사 봉변을 당한 구 부총리는 국무위원 20명 중 의전 서열이 제일 높다. 청와대가 경제사령탑으로 그를 임명하면서 “대한민국 성장의 길을 찾을 적임자”라고 소개한 게 불과 1년 3개월 전이다. 회사의 말단 직원에게도 하지 않는 인사 통보 방식에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하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