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대학 신입생 OT를 하러 서울에 갔을 때다. 버스 안에서 전자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몰라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어느 여사님께서 가방에서 벽돌만 한 휴대전화를 꺼내 통화를 시작했다. 당시 휴대전화는 웬만한 자동차 한 대 값이었다. 기술은 빠르게 발달해 내가 대학원에 진학할 즈음 모든 사람이 휴대전화를 가질 수 있었고 지금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
요즘 가장 핫한 기술 분야는 단연 인공지능(AI)이다. AI 발달에 대해 비관적 견해와 낙관적 견해가 공존한다. 대표적인 비관적 견해는 유드코스키와 소아레스가 쓴 ‘AI 신의 탄생, 인간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볼 수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인간의 종말’이라는 표현을,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라보란스로 표현되던 인간의 특성이 AI 시대를 맞아 종말을 고하고, 필자가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존재 의미를 찾는 호모 이그지스투스처럼 새로운 특징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간이 지구상에서 멸종된다는 의미였다. 인간이 AI를 탄생시켰지만, 어떻게 성장하는지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AI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발전하여 전 인류의 지능을 합한 것보다 강력한 초지능에 도달하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낙관적 견해의 대표주자는 일론 머스크다. 그는 미래에는 AI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며, 생산성이 높아져 누구나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또, 지금 의대에 가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선택이라고 했는데, AI를 활용한 질병치료의 시대가 곧 다가와서, 전통적 방식의 의대 수련 과정의 유용성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앤트로픽의 CEO 다리오 아모데이도 5~10년 내 인류의 질병에 대한 치료법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예측을 지지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하나는 글로벌 IT기업인 깃랩의 전 CEO, 시드 시브란디의 경우다. 그는 2023년, 희귀한 골육종 진단을 받고 수술과 방사선 치료, 항암치료 등 의학적 조치를 모두 거치고도 암이 재발했고 더 이상 의학적 방법이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는 환자로서 삶을 정리하는 대신, IT개발자로서 자신의 암을 해킹하는 방법을 직접 찾아 나섰다. 자신의 몸과 암세포의 모든 데이터를 디지털화하여 25TB 규모의 종양 데이터를 수집하고, 자신의 정상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단백질을 여러 개 찾아냈다. 이 단백질이 있는 세포만 공격하도록 치료제를 설계해서 2025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최근 사례는 고위험 피부암 환자 1137명을 대상으로 미국 제약회사 모더나가 실시한 임상 3상 성공이다. 각 환자의 암세포 제거 수술을 한 뒤, 떼어 낸 암세포에서 그 사람의 정상 세포에는 없는 30여 개의 돌연변이 단백질을 AI를 활용하여 찾아낸 다음, 그 유전정보를 담은 맞춤형 mRNA를 투여하면 암세포와 유사한 항원이 만들어지고, 환자의 면역세포가 이를 공격하면서 훈련을 한 뒤, 수술로 제거되지 않고 숨어 있거나, 재발, 전이된 암세포를 골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인류 질병 정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두 소식에 달린 댓글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지갑 두께가 수명을 결정한다”.
기존 의학이 모든 사람에게 사용할 백신이나 약을 대량 생산하면서 단가를 낮출 수 있었다면, 개인마다 맞춤 치료를 하는 초개인화 의학은 환자 한 명 한 명마다 다른 치료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결국 과학기술이 추구하는 방향은 하나다. 인간이 생존을 위한 노동을 덜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 안전하고 오래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낙관론자들이 예측하듯 5~10년 이내에 인간 질병 치료법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질병 걱정을 하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다. 물론, 비관론자들이 경고하는 인류 멸종을 피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