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글쓰기 프로그램의 마지막 수업을 맞아, 각자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소감이 오갔는데, 특히 다른 수강생이 쓴 글을 보고 자극받아 자신도 어떻게든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강사로서 글을 잘 쓰는 법을 충분히 설명했는지 확신이 없었지만, 글을 매개로 다른 이들과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느슨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자그마한 도움을 줬다는 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다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에 있어 질투와 경쟁, 동경은 최고의 동력이다. 타인이 쓴 멋진 글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절대 이렇게 못 쓰겠다는 좌절감이 드는 한편 나 역시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형성된다. 실제로 수강생 중 한두 명이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하면, 글쓰기를 향한 욕망이 수강생 전체로 퍼지곤 한다. 이러한 광경이 특별한 이유는, 강의실 밖의 세계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주식과 관련한 이야기가 언론 기사와 SNS 등을 뒤덮었고, 온라인 공간을 넘어 개인의 일상에도 깊숙이 침투했다. 주식이 크게 오를 때와 내릴 때의 모습은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와 ‘조모(JOMO, Joy Of Missing Out)’라는 두 가지 감정으로 나타났다. 코스피가 급격하게 오르던 당시 주식을 하지 않는 것은 무지를 넘어 도태된 삶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자연스레 상승장에 편승하지 못한 이들을 중심으로 불안감과 두려움에 기반한 ‘포모’가 급격하게 퍼졌다. 한편 주식이 급격히 떨어지자 다른 형태의 감정이 번지기 시작했다. 불행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불행은 온갖 환상을 심어주고 그것에 닿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주식이 계속해서 오를 것이라는 환상은 그 달콤함만큼이나 추락 이후의 충격을 더했다. 자연스레 처음부터 소외된 것이 더 나았다는 안도감에 기반한 ‘조모’가 퍼졌다. 주가가 크게 요동치며 ‘포모’와 ‘조모’가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남들이 돈을 버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함을 느끼거나, 반대로 남들이 돈을 잃는 모습을 보면서 상대적인 안도감을 느끼는 양자택일의 감정밖에 없었다. 포모와 조모가 닮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과 불행의 기준이 타인으로 설정되며, 개인의 노력만으로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하거나 제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게 포모는 조모가 되고, 조모는 다시 포모로 되며 부정적인 순환고리가 형성됐다. 동경은 질투가 되고,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은 누군가의 위안을 위한 대상으로 전락했다.
월급을 꾸준히 모은다고 집을 사거나 삶의 다음 단계를 꿈꿀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함부로 폄하할 수는 없지만, 타인의 성공을 향한 시기와 질투, 타인의 불행을 통한 위안과 안도감만이 전부인 세상을 마냥 긍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점에서 얼마 전 경험한 강의실 안의 세계는 분명 세상의 문법과는 다른 곳에 있었다. 비록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잠시 존재했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포모와 조모가 아닌 다른 형태로 채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서로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다른 사람이 밤새 노력한 결과물에 감탄하고, 당장의 경제적인 성취로 이어지지 않음에도 자신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에 도전해보는 감각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음에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긴 어렵다. 너무 이상적인 모습이기에 세상의 논리와 다르며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에서 이러한 순간을 지금보다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영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주식 투자를 통해 자산을 늘리는 일이 중요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채우고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한 번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삶에서 꼭 필요하다고 해서, 그것이 삶의 전부가 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다른 삶의 가능성은 언제나 양자택일이 아닌 비중의 문제일 것이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주식의 불문율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본다면, 오로지 주식시장에만 모든 것을 담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달걀은 언제든 깨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