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폭염의 시절이 끝나간다. 입추와 처서를 지난 도시 부산은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시원한 공기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올여름 더위가 데이터로 명확히 표시하는 지점이 있다. 40이라는 숫자이다. 30도를 넘는 것이 폭염의 상징이었던 시절을 지나 어느새 대한민국 여름 폭염의 기준점이 40도로 훌쩍 뛰어올라 버렸다.
폭염의 기준값 변동으로 최근의 뉴스 구성에도 변화가 크다. 저소득층과 교도소의 냉방 복지에 관한 갈등으로부터, 노후 주택의 쿨루프 사업과 서울시의 그늘 보행권 등 구체적인 대책, 그리고 실외기 없는 에어컨과 차세대 열 교환식 냉방 시스템 등 신기술까지 우리 사회는 어느덧 지구온난화의 한가운데에 선 지구인을 위한 대책을 꾸준히 강구하고 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기후 위기는 2023년 유엔에서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를 지구열대화(global boiling)로 더 자극적인 이름으로 바꾸어도 늘 그러하듯 무감각해진 위협이다. 그래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발생시키는 도시와 건축 분야에 저탄소·친환경 정책을 도입하고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언제나 드높았지만 항상 제자리걸음이다. 마치 ‘늑대가 나타났다’는 양치기의 거짓말에 무뎌지듯 ‘지구가 위험하다’는 외침은 자본과 욕망의 시대에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게다가 친환경적인 삶을 강조하며 도덕적 우월감까지 내보이던 프랑스 시민이 에어컨을 구매하기 위해 사회적 혼란마저 야기하는 모습에서, 이른바 문명 대국의 위선을 발견한 듯 조롱을 보내고 카타르시스마저 느끼는 듯하다.
인류는 산업혁명으로 비약적인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다. 인간과 동물에 의존하던 노동력을 기계가 대체하면서 힘의 증강을 이뤄냈지만, 그 대가는 환경의 역습으로 돌아왔다. 지난 200여 년간 인간이 배출한 탄소량은 인류가 지구에 출현한 이래 전체 배출량의 80%를 차지하고, 지구 평균온도는 이미 1.2~1.4도 상승해 파리협정이 정한 마지노선인 1.5도에 턱밑까지 다다랐다. ‘1.5도 상승’이라는 임계점은 기후 시스템이 인간의 노력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회복 불능의 단계로 접어들고 각종 환경 재앙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시점이다.
문제는 산업혁명의 여파에 이어 지구 환경을 위협하는 또 다른 거대한 파도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바로 인공지능 혁명이다. 인간 체중의 2%에 불과한 뇌가 전체 에너지의 20%를 소비하듯, 인공지능의 에너지 소비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과거 산업혁명 이후 에너지 소비가 2배로 늘어나는 데 100년이 걸린 반면, 아직 인공지능 사회의 초기임에도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소비는 불과 3~5년 만에 2배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의 열섬 현상으로 주변 온도가 급상승할 위험까지 지적한다.
애플이 대중화한 ‘클라우드(cloud)’라는 단어는 데이터가 구름처럼 허공에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상업이 만들어 낸 성공적인 이미지이다. 하지만 데이터의 실체는 구름이 아니다. 이면에는 거대한 인공 구조물인 데이터센터가 끊임없이 에너지와 물을 소비하고 열을 내뿜으며, 이른바 인공의 지능을 생산하는 물리적 실체를 가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자체마다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며 지역 성장의 열쇠로 기대하고 있지만, 지금이야말로 이 새로운 혁명이 지구 환경으로부터 시작해서 지역의 ‘미기후(microclimate)’를 교란하는 혹독한 환경 고지서에 미리 대비해야 할 때다.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담론은 필연적으로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도시 미기후의 문제로 귀결된다. 얼마 전 건축공간연구원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아파트 단지의 조경 공간은 탄소 저감뿐만 아니라 도시 녹지를 형성해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지역의 미기후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비슷하게 뉴욕시에서도 도시 숲을 통해 도시 표면온도와 초미세먼지를 줄이는 숲 지붕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거대 청사진만으로는 지구 환경의 악화를 막을 수 없다. 장기적인 에너지 전환 전략과 함께, 우리가 매일 거니는 거리의 나무를 가꾸고 바람길을 찾는 것과 같은 즉각적인 도시·건축적 실천이 촘촘히 조화를 이루어야만 해결의 실마리가 잡힌다. 도시와 건축은 지구와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돼야 한다. 연결과 흐름을 생각하고 자원과 폐기를 순환으로 이어야 한다. 도시와 건축은 무기질 구조물에 기계 설비를 덕지덕지 붙인 모습을 벗어나 지구와 자연에 연결된 작은 생태계로서 새로이 고민돼야 한다.
도시와 건축은 강력한 부동산 욕망과 맞닿아있다. 공공이나 지구의 안녕이 들어설 틈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제도는 언제나 편법과 눈가림으로 콘크리트에 심어놓은 나무처럼 버려지기 일쑤다. 하지만 이제 지구 환경의 위기는 추상적 경고가 아니라 내 집 앞의 폭염과 폭우라는 현실로 다가왔다. 지구 전체를 구하자는 공허한 외침을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지역의 미기후부터 세심하게 디자인하고 가꾸는 실천적 전환이 시급하다. 디자인은 예쁜 껍질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세계디자인수도 부산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