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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괴트바이그 수도원(Stift Gottweig)이 보이는 말라트 (Malat) 와이너리의 포도밭. |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는 묘한 리듬이 있다. 화려하지만 과장되지 않고,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았다. 도시는 클래식 음악처럼 흐르고, 사람들은 와인 한 잔을 통해 그 흐름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처음 빈에 도착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도시가 급하게 마시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커피도 그렇고 와인도 그렇다. 누군가는 두 시간을 들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또 누군가는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한 병의 와인을 곁에 둔 채 대화를 이어간다.
빈의 와인은 단순히 알코올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늦추는 하나의 방식이다. 특히 도시 외곽의 호이리게(Heuriger)에 가면 그 감정은 더욱 선명해진다.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병, 갓 구운 빵 냄새, 멀리서 들려오는 아코디언 소리. 그리고 노을빛 아래 반짝이는 그뤼너 벨트리너 한 잔.
오스트리아 와인은 대체로 조용하다. 프랑스 와인처럼 권위를 주장하지도 않고, 이탈리아 와인처럼 열정적으로 손짓하지도 않는다. 담백하게 자신의 결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오스트리아 와인의 스타일이 빈이라는 도시의 성격과 놀랍도록 닮아있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 와인은 화려함보다 균형, 힘보다 긴장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선명한 산도와 깨끗한 과실, 섬세한 미네랄리티가 중심을 잡고, 과장하기보다 포도가 자란 땅과 빈티지의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뤼너 벨트리너(Gruner Veltliner)는 빈의 공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품종이다. 깨끗한 산도와 흰 후추 같은 섬세한 향신료의 여운은 마치 빈의 오래된 건축물과 닮아있다. 정교하지만 차갑지 않고, 우아하지만 과시하지 않는다. 리슬링 역시 마찬가지다. 또렷한 산도와 미네랄, 절제된 과실 뒤로 이어지는 긴 여운은 빈을 흐르는 클래식 음악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샤르도네를 만나면 또 다른 표정이 보인다. 서늘한 기후에서 자란 샤르도네는 지나치게 무겁거나 화려하지 않고 신선한 산도와 섬세한 과실, 부드러운 질감이 조화를 이룬다. 화려한 무도회장보다는 공연이 끝난 뒤 조용히 불이 켜진 빈의 카페를 닮았다. 말수가 적지만 오래 대화를 나누고 싶은 와인이다. 블라우프랑키쉬(Blaufrankisch)는 검붉은 체리와 베리, 후추와 허브의 향, 선명한 산도, 단단하고 세련된 타닌, 묵직함으로 압도하기보다 긴장감과 깊이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밤이 내려앉은 빈의 골목처럼 조금은 어둡고 진지하지만 묘한 따뜻함이 있다. 좋은 오스트리아 와인을 마시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보여주기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느낌을 받는다.
밤이 깊어지면서 도시의 감정은 조금씩 달라진다. 고풍스러운 골목의 조명 아래에서 마시는 와인 한 잔은 클래식 공연이 끝난 뒤의 정적과 비슷하다. 박수는 끝났지만, 감정은 아직 남아 있는 순간. 어쩌면 빈에서의 와인은 ‘맛’보다 ‘여운’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사람은 때때로 어떤 도시를 기억할 때 건물이 아니라 공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공기 속에는 늘 향이 남아 있다. 빈의 향은 오래된 책장과 클래식 음악, 비에 젖은 석조 건물, 그리고 천천히 마시던 와인의 잔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조금 천천히 바라보게 만드는 감정의 속도이며,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아 두려는 가장 우아한 방식이다. 빈에서 와인을 마시는 것은 어쩌면 시간을 마시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