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를 둘러싼 반응이 상영관 안팎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극호’와 ‘불호’를 극단적으로 오가는 평가는 SNS상의 콘텐츠로 제작되며 그 열기를 더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논쟁의 장 덕에 극장 매출표의 숫자도 간만에 상승 곡선을 그린다. 이례적인 일이다.
<호프>에 쏠린 이 같은 관심은 곧 한국 영화 산업의 구조적 불황과 부흥에 대한 열망을 방증한다. 이번 여름, 국내 대형 상업 영화가 <호프>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시장의 체력이 얼마나 고갈됐는지를 보여준다.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영화표 할인권을 2차에 걸쳐 배포하는 등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관객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티켓 가격 인상과 맞물려 OTT 플랫폼 및 개인 맞춤형 유튜브 콘텐츠가 일상을 점유하면서 극장은 저렴하고 편안한 소일거리의 위치를 상실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사막화한 생태계 속에서 <호프>의 흥행은 산업적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처럼 보인다. 대작 영화의 부재로 말라붙었던 배급망과 극장에 관객을 다시 유입시키고, <왕과 사는 남자>에 이어 영화라는 매체가 여전히 사회적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유효한 동력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영화 산업의 부흥은 단발성 대작의 성공이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이 안정적으로 선순환하는 구조에서 시작되기에 <호프> 이후의 작품의 존재 가능성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영화 산업을 위한 인프라의 불균형과 왜곡은 관람 환경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최근 <호프> 담론의 주요 축 중 하나는 4DX 등의 특수관 관람 경험이다. 수도권에 비해 지역의 특수관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특수관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지역도 부지기수다. 심지어 부산처럼 인프라를 갖춘 대도시조차 국내 대작인 <호프>가 한창 흥행세를 보이는 시점에 대다수 4DX 관람 회차를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독점한 상태다. 이는 관객의 체감형 관람 욕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인프라의 수도권 쏠림과 당장의 자본 논리에 따라 스크린을 분배하는 배급 구조의 고질적 폐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다음으로 살펴볼 대목은 영화 그 자체보다 ‘논쟁’을 소비하는 대중의 심리적 기제다. 관객이 고비용을 감수하고 극장으로 향하는 주요 동기는 작품의 완결성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담론의 장에 참여하기 위함이다. 대중은 영화를 소통의 재료나 비평적 자원으로 선택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문화예술 산업에 긍정적인 자세일 것이다. 다만 온라인 상의 누리꾼들이 논쟁을 소비하는 태도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작품에 대한 건설적인 분석이나 다채로운 비평 대신, ‘불호’를 명목으로 한 조롱과 자극적인 밈(meme)이 화제성을 독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논쟁을 하나의 유희로 소비하기로 했다면, 그 양상은 비아냥이 아닌 양쪽 모두가 즐거우면서도 진지하게 임하는 토론이어야 한다. 독창적이라는 찬사와 한계가 있다는 정밀한 비판이 상호 존중 속에서 교차할 때 비로소 영화를 둘러싼 논쟁은 소모적 소동을 넘어 건강한 문화적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 모든 현상의 바탕에는 문화예술 전반에 지속적인 관심과 이를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여유의 문제가 자리한다. 한 사회의 문화적 저변이 풍요로워지려면 구성원의 삶에 경제적·정신적 여백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서 문화예술산업의 소비는 엄격한 가성비 중심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실패 위험이 적거나, 혹은 남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반드시 봐야만 하는 화제작에만 지출을 집중하는 안전 지향적 태도가 고착화한 것이다.
영화 <호프>가 한국 영화계의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정당하다. 그러나 단 한 편의 스코어나 인터넷의 뜨거운 촌평만으로 영화 산업의 부활을 말할 수는 없다. 다양한 크기의 영화를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사회적 여유가 회복되고, 이에 응답하는 산업 생태계가 공존할 때 비로소 한국 영화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