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독립에 온 삶을 다 바친 영웅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은 ‘백범일지’에 이렇게 썼다.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것이다.”
지난달 19일 저녁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회식 현장. 150여 개 나라에서 온 세계유산 보호 전문가 관계자 활동가 책임자 3000여 명이 객석을 메웠다. 연단에 선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 기념”임을 강조하며 축사의 문을 열었다. “수십 년 전, 백범 김구 선생께서는 부강한 나라보다 높은 문화의 힘으로 인류에 공헌하는 나라를 꿈꾸셨습니다. … 이제 대한민국은 우리의 이야기로 전 세계인을 웃기고 울리는 찬란한 문화강국으로 도약했습니다.”
이어 축사를 한 사람은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이 됐음을 알리는 ‘증거’ 가운데 한 명이었다. 대중음악 아티스트 G-DRAGON(지드래곤·권지용)이었다. 그의 연설은 깊게 울렸다. “부산은 과거 전쟁의 뼈아픈 역사를 현재 평화와 희망의 터전으로 꽃피운 경이로운 도시입니다.” 축사는 ‘아름다움’을 향했다. “유산을 지키는 일은 미래의 평화를 만드는 일입니다. 예술도 그런 힘을 발휘합니다. 예술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마음은 하나둘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날 벡스코에 마련된 기자실에서 개회식을 봤다. 대통령이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과 유엔, 그리고 ‘오로지 높은 문화의 힘’을 기린 대목과 G-DRAGON이 예술의 힘을 강조한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다. 백범의 꿈과 철학과 헌신이 이렇게 열매를 맺었구나 하는 감동이 있었다.
지난 15일은 제81주년 광복절이었다.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독립투사와 그 후손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표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친일을 놓고 논란이 일거나 시비가 붙기도 했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 독립지사의 삶을 비웃거나 엄혹했던 독립투쟁을 폄하하는 세력을 접할 때마다 속으로 욕한다. 내 나라 내 민족을 사랑해서 자기를 희생해 가며 공동체를 위해 애쓴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일이 뭐가 그리 싫고 원통하고 화가 나기에 희한한 논리를 만들고 들이대는지 그 ‘친일파들’이 신기할 지경이다.
하지만 올해 광복절에 즈음해서는 좀 밝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었다. 반일종족주의류 괴상한 주장이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존엄성과 인권마저 침해하는 부류에 관해 또 생각하느니, 우리 가슴 속 독립지사들을 한 번 더 떠올리고자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분은 역시 백범 김구 선생이다. 학창 시절과 초년병 기자 시절 ‘오로지 높은 문화의 힘’을 향한 백범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경제가 크고 군사력이 강한 나라는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지만, 문화의 힘이 강한 게 어떤 건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막상 오늘날 한국을 보니 이제야 문화가 강하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겠다. 백범 선생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보셨다면, 함박웃음을 지으셨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언론인 출신 작가 임순만이 쓴 역작 ‘백범 강산에 눕다’를 추천한다.
우당 이회영(1867~1932) 선생 일가 또한 떠올렸다. 삼한갑족으로 거대한 부를 소유한 우당 이회영 선생 일가가 모든 재산을 처분해 만주로 가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강력한 독립투쟁을 펼치고, 그 때문에 얻게 된 가난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은 모습은 ‘진정한 명문가’를 보여준다. 아마 우당 이회영 선생 집안에 대해서는 계속 공격 폄하 또는 무시가 이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에 자발적 친일을 세게 해서 큰 부를 축적한 쪽에서는 우당 가문처럼 ‘표상’이 되는 존재가 밉고 거슬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우리 후손은 우당 가문을 더 공부하자.
지난해 찾아갔던 경북 안동 임청각(臨淸閣)도 잊을 수 없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내는 등 일가와 함께 전력을 다해 독립투쟁에 헌신한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과 그 가족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은 곳이 아름다운 안동 임청각이다. 이 집안도 정말로 명문가다.
인문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이 올해 7월 펴낸 책 ‘도올이 본 부마 시민혁명’(통나무)은 무척 인상 깊었다. 도올 선생이 아니라면 연출하기 힘들, 해박하고 현란한 전개는 매력 포인트였다. 저자는 이 땅에서 일어난 “동학혁명(1894)-3·1혁명(1919)-4·19혁명(1960)-부마시민혁명(1979)-촛불혁명(2016. 10~2017. 3)-빛의 혁명(2024. 12~2025. 4)”(168쪽)을 분리된 것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민중성이 분출했던 동학혁명에 뿌리를 두고 서로 이어진 것으로 파악한다.
이런 설명을 접하니,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처럼 독립운동을 가두지 말고, 더 폭넓게 보는 시야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조봉권 문화체육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