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들어선 첫날, 여름은 맹독성 동물처럼 이빨을 드러냈다. 경남 양산의 낮 최고기온이 41.6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가장 높은 기온이었다. 이어 2일에는 42.5도로 전날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상관측 122년 만의 신기록이 하루만에 경신됐다. 흔히 말하는 사람의 체온 36.5도보다 6도나 높았다. 이제 40도는 먼 나라의 숫자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체온이 되었다.
양산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에어컨이 켜진 사무실에서 일했는데도 하루 종일 혼이 빠져나간 듯 멍했다고 했다. 30도의 더위와 40도의 더위는 단순히 10도 차이가 아니다. 30도는 견디기 힘든 날씨다. 40도는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이다. 몸이 식을 틈을 잃는다. 생각이 느려진다. 노동이 멈춘다. 건강이 파괴된다.
기상청은 올해 6월 1일부터 ‘폭염중대경보’와 ‘열대야주의보’를 운영하고 있다. 폭염중대경보는 최고체감온도 38도 이상 또는 최고기온 39도 이상이 예상될 때 내리는 최상위 폭염특보다. 7월 12일 경북 경산과 포항에 처음 발령됐다. 경보가 울리면 야외활동을 멈춰야 한다. 시원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가족과 이웃의 안전도 확인해야 한다.
필요한 제도다. 그러나 경보만으로 기온은 내려가지 않는다. “위험하니 피하라”는 대책을 넘어야 한다. 이제는 “도시를 덜 뜨겁게 만들라”는 정책이 필요하다.
나무를 도시의 냉방시설로 대접해야 한다. 가로수는 장식물이 아니다. 그늘을 만든다. 수분을 내보내 주변을 식힌다. 버스정류장과 통학로, 전통시장, 골목길, 공영주차장부터 큰 나무를 심어야 한다. 어린 묘목 몇 그루를 심고 녹화사업이라 부르지 말아야 한다. 오래 살아 넓은 그늘을 만드는 나무를 지켜야 한다. 새로 심은 나무뿐 아니라 잘라낸 숫자도 공개해야 한다.
검은 색깔의 도시를 밝은 도시로 바꿔야 한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낮의 열을 품었다가 밤에 다시 내놓는다. 지붕에는 햇빛을 반사하는 밝은 도료를 칠해야 한다. 공공건물부터 쿨루프와 옥상녹화를 의무화해야 한다. 도로와 주차장에는 열을 덜 머금는 포장재를 사용해야 한다. 빗물이 땅으로 스며드는 투수성 포장도 늘려야 한다. 나무와 녹지, 밝은 지붕과 녹색 지붕, 투수성 포장은 이미 검증된 도시 열섬 완화책이다.
바람길과 물길을 되살려야 한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을 막지 말아야 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고층 건물로 가두지 말아야 한다. 복개한 하천을 가능한 곳부터 열어야 한다. 도심의 작은 물길과 녹지축을 이어야 한다. 도시는 건물의 집합이 아니다. 바람이 지나고 물이 순환해야 살아 있는 도시다.
에어컨의 효율을 높이되 에어컨만 믿어서는 안 된다. 에어컨은 생명을 지키는 필수 장치다. 그러나 실내의 열을 실외로 밀어낸다. 도시를 더 뜨겁게 만들기도 한다. 폭염기 냉방 수요는 전력망에도 큰 부담을 준다. 단열과 차양을 강화해야 한다. 고효율 냉방기 교체를 지원해야 한다. 태양광과 에너지저장장치를 공공 냉방시설에 연결해야 한다. 전기요금이 두려워 에어컨을 켜지 못하는 가정에는 냉방비를 지원해야 한다.
밤을 위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무더위쉼터를 낮에만 열어서는 열대야를 막을 수 없다. 도서관과 복지관, 체육관 일부를 밤에도 열어야 한다. 홀몸노인과 장애인, 옥탑방과 반지하 주민에게는 이동수단도 제공해야 한다. 폭염은 모두에게 오지만 피해는 가난한 이웃에게 먼저 간다. 지방정부마다 ‘도시 기온 1도 낮추기’ 목표를 세워야 한다. 동네별 열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가장 뜨거운 곳부터 예산을 써야 한다. 그건 시민을 살리는 생존 예산이다.
42.5도는 기록이 아니다. 경고다. 더 높은 신기록을 기다리듯 에어컨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을 수는 없다. 여름의 기온을 낮추는 일은 하늘의 몫만이 아니다. 우리가 만든 도시의 열은 우리가 줄여야 한다. 지금 도시를 식히지 않으면, 언젠가 여름이 우리를 도시 밖으로 밀어낼 것이다. 그날이 인류 멸망의 날이 될 것이다. 너와 나, 우리가 모두 사라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