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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국의 ‘사람’(1957년). |
요즘 한국 미술계는 그야말로 유영국(劉永國, 1916-2002) 전성시대이다. 국내외 미술관과 유명 화랑 등에서 쉼 없이 전시가 이어지고, 비엔날레에서도 한국의 대표 근대 작가로 소개되기도 한다. 그동안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근대 작가로는 한국적인 정서의 박수근, 천부적 감각의 이중섭, 현대적 감각의 김환기라는 걸출한 세 명의 스타 작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들이 뛰어난 작가임에는 분명하지만 지나치게 오랜 세월 화단을 지배해 왔고, 동일한 작품들의 반복적인 전시로 점점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어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들과 함께 박생광 천경자 박래현 등 여러 작가들이 전면에 등장하여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기도 했지만 미술계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미술계는 이러한 매너리즘을 타개하고 미술시장을 선도할 만한 또 다른 작가를 갈구했다. 이를 위해서는 작가의 삶이 매력적이고, 작품의 수준 또한 높고, 작품 수도 제법 있어야 하는 기준에 맞는 작가여야 했다.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며 중심에 선 화가가 바로 유영국이다. 2016년 탄생 100주년 전시회를 시작으로 최근 몇 년 사이에 강풍으로 불어닥친 유영국 바람은 올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대적 회고전을 계기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유영국은 신사실파, 모던아트협회 등의 미술운동을 거치며 일본을 거쳐 유입된 서양화를 현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화가이다. 도쿄에 있는 문화학원을 다니며 추상미술을 접하였으며, 완전한 추상화보다는 바다, 산과 같은 자연을 추상화한 반추상적 요소가 강한 작품을 주로 했다. 비교적 부유한 환경에서 평생 고집스럽게 그림을 그렸으며, 그림을 매개로 생활을 영위하지 않아 작품을 남발하지 않고 제법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초기 작품은 물감을 두텁게 하여 깊이 있는 색감을 보여주었으며, 추상성이 매우 강하고, 사색적인 화면을 보여주었다. 후반기에는 주로 산을 중심 소재로 하여 밝고 생동감 있는 생생한 화면을 보여주었다.
유영국은 자연을 주소재로 하고 인물을 잘 그리지 않았는데, 1957년 제2회 ‘모던아트전’에 출품한 ‘사람’은 인체를 소재로 한 유일한 작품이다. 12호 정도의 작은 작품이나 구도를 완결시키려는 의식의 집중이나 마티에르를 견고히 하려는 작업의 밀도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치밀하고 견고한 작품이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바르고 올리기를 반복하며 다듬고 또 다듬어 깊이 있고 견고한 질감을 만들어냈다. 그렸다기보다는 쌓아 구축했다는 표현이 옳을 만큼 공력을 들여 만들어낸 표면은 마치 깊은 땅속에서 파내어진 광물덩어리 같은 느낌을 준다. 물감의 기름기와 반복된 붓질이 만들어낸 광택은 유화 물감의 광택과는 다른 심연의 울림 같은 깊이가 있다.
이 작품은 매우 과묵하고 논리적인 유영국의 화가로서의 품성을 잘 보여준다. 유영국은 감성보다는 이지적 성향이 강한 화가이다. 감성의 분출보다는 지성의 축적에 의해 화면을 구축하는 화가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입체적이고 구성적 요소가 강하지만 색깔의 선택이나 색감의 조화, 소재의 취택이나 색 면의 구성 방식 등이 다분히 감성적인 요소가 강하게 느껴진다. 소재로 사용된 사람의 형태도 분명히 드러나는 등 유영국의 작품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구상성과 서정성이 강한 특별한 지점에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