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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소리] 거버넌스, 느리게 걸어갈 각오

우동준 ㈜일종의격려 대표

  • 우동준 ㈜일종의격려 대표
  •  |   입력 : 2026-07-26 19:29:33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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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지방정부가 출범하며 시민과의 협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협치는 흔히 행정의 의지 문제로 여겨진다. 물론 다양한 자리에 시민을 초대하는 의지는 협치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초대한 뒤에 무엇을 묻고, 그 대답을 어디까지 결정에 반영하는지는 의지가 아니라 형식이 정한다. 협치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열린 제도의 형식과 그 형식을 반복해 지켜내는 관성이다. 협치를 향한 선언은 한 번이면 충분하지만, 변화를 위한 관성은 꾸준함이 필요하다.

영국의 정치학자 로드 로즈는 거버넌스에 고정된 본질적 형태가 없으며, 거버넌스는 참여자의 신념과 반복하는 관행을 통해 매번 새로 구성된다고 봤다. 즉 거버넌스는 위원회나 협의체의 특정한 형식을 조성한다고 해서 완성되지 않고, 그 안에서 수행되는 참여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협치를 검증하는 작업은 참여기구 안에서 누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말하고 결정하는지를 서술하는 일이 된다.

영국의 도시재생 연구자들은 참여가 제도화할수록 오히려 참여의 폭이 좁아지는 현상을 ‘제도적 코르셋’이라 이름 붙였다. 애초에 지역 주민이 전략 수립부터 실행과 평가까지 관여하도록 설계된 사업에서도, 제도화한 참여 자체가 제약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참여의 통로가 공식화하는 순간, 그 통로에 들어설 자격의 요건이 함께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위원의 정원과 임기, 추천 경로, 회의의 시간과 장소는 모두 중립적인 절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가 참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조건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목록에 오르는 이들은 대체로 직업과 학력, 자산과 사회적 명망을 통해 이미 지역사회 내 영향력을 확보한 시민이다. 지방정부는 효율적인 사업 진행을 위해 대표성을 이미 갖춘 조직과 소통하고, 그 결과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을 대신한다. 나아가 그 기구 바깥에 놓인 시민의 발언은 집단의 의견이 아니라 개별적인 민원으로 분류된다. 즉 제도화한 참여기구가 만들어 내는 격차는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사회적 위치에 따라 발생하며, 제도는 그 격차를 교정하기보다 수동적으로 승인한다.

이러한 모순의 근원은 지방정부가 거버넌스를 이중적으로 이해한다는 데 있다. 거버넌스에는 시민 참여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규범적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고 성공적 정책 수행을 입증하는 도구적 기능이다. 앞서 보았듯 거버넌스에는 고정된 형태가 없으므로, 둘 중 무엇을 목적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위원회가 전혀 다른 기구가 된다. 빠르고 원활한 사업 진행이 목표가 되면, 권한을 획득한 소수만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훈련되지 않은 다수는 배제되는 편이 오히려 합리적 선택이 된다. 도구적 기능이 강화될수록 규범적 기능은 후퇴한다. 협치의 성과가 참여 인원과 회의 횟수로만 집계되는 한, 협치는 명목적 성공으로 보고될 수 있다. 지방정부가 참여기구를 성과 산출 도구로만 이해한다면, 현장의 협치 역시 그 방향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부산 청년의 시정 참여를 위해 조직된 청년정책네트워크도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하는 숙의 구조에서 출발했으나, 점차 인원을 줄이고 의제의 폭도 축소됐다. 숙의의 축소는 특정 공무원의 의지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이 오래 누적된 결과에 가깝다. 숙의는 본래 비효율적이다. 훈련되지 않은 다수의 이야기는 정돈돼 있지 않아 수렴에 품이 들고, 시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는 일은 곧 최종 결정의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효율을 기준으로 삼는 한, 인원을 줄이고 의제를 좁히는 선택은 매 순간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 느림을 감당하지 않은 결정은 결국 더 늦게, 더 큰 갈등으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협치에 필요한 것은 한 번의 선언이 아니라 반복이다. 반복되지 않은 의지는 관성이 되지 못하고, 관성이 되지 못한 협치는 매번 효율 앞에서 밀려난다. 앞서 보았듯 효율은 언제나 더 합리적인 선택지를 따른다. 그러므로 협치를 지킨다는 것은 매 순간의 효율을 거슬러 본질을 바라보는 용기의 문제가 된다. 자기 권한의 일부를 내려놓고, 자기 임기 안에 성과가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느린 속도를 견디는 용기 말이다. 새 지방정부가 부디 그 용기를 오래 유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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