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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 평화의 수도 되어야 할 부산

허재택 유엔평화기념관 관장

  • 허재택 유엔평화기념관 관장
  •  |   입력 : 2026-07-23 18:46:0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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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건물로 성장하지만, 문명은 기억으로 성장한다. 도시의 품격은 얼마나 높은 빌딩을 세웠는가가 아니라 어떤 역사를 기억하고 어떤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특별한 도시다.

1950년 여름, 대한민국은 국가 존망이 걸린 절체절명 위기를 맞았다. 서울은 함락되었고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까지 밀려났다. 세계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비관했다. 그러나 부산은 무너지지 않았다. 부산교두보를 끝까지 지켜 낸 월튼 H. 워커 장군과 국군, 그리고 유엔군의 희생은 인천상륙작전이라는 반전의 출발점이 되었고 오늘의 자유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했다. 그 역사의 현장이 지금도 국립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에 남아 있는 워커하우스이다. 워커하우스는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다. 대한민국 운명이 논의되었던 전략의 공간이자, 자유를 지키기 위해 세계가 연대했던 국제협력의 상징이다. 또한 한국전쟁을 평화교육으로 이어 갈 수 있는 살아 있는 역사 교실이며 미래 세대에게 자유와 책임, 연대의 가치를 전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세계에는 전쟁을 기념하는 시설은 많지만, 전쟁의 기억을 평화의 미래로 연결하는 공간은 드물다. 워커하우스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특정 국가의 유산이 아니라, 유엔 참전국들이 함께 지켜 낸 자유와 평화의 역사를 증언하는 인류 공동의 유산이다.

부산은 이미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공원과 유엔평화기념관을 품고 있다. 여기에 워커하우스가 더해진다면 부산은 추모와 교육, 역사와 미래를 하나로 잇는 세계적인 평화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이제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 국립부경대학교 워커하우스를 중심으로 유엔평화기념관과 유엔기념공원을 연결하는 ‘유엔평화 역사벨트’를 조성해야 한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세계 청년들이 한국전쟁을 배우고 자유와 평화, 국제연대의 가치를 토론하는 국제 평화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정부와 부산시 국립부경대학교 국가보훈부 유엔 참전국이 함께하는 ‘워커 국제평화포럼’을 정례화하고 국제학술연구와 디지털 아카이브, 청소년 평화캠프와 참전국 후손 교류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면 부산은 세계 평화교육을 선도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에서 평화는 시작된다. 우리가 워커 장군을 기억하는 이유는 한 사람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유를 위해 자신의 안위를 넘어 더 큰 가치를 선택했던 용기와 헌신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국적은 달라도 희생은 인류 공동의 유산이며, 자유는 인류가 함께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이다.

부산은 한때 대한민국을 지켜 낸 도시였다. 이제는 세계가 평화를 배우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국립부경대학교 워커하우스가 될 수 있다. 건물은 세월 속에 낡아도 그 안에 담긴 정신은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는 도시는 미래를 잃지 않고, 감사하는 문명은 흔들리지 않는다. 부산이 간직한 워커하우스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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